아이를 입학시키고 학부모 상담을 처음으로 신청하게 되었다. 신청하는 순간도 기다리는 순간도 떨린다.
일호가 1학년때는 같은 학교라서 상담을 안 했다. 일호의 담임선생님과는 종종 대화하는 사이라 특별히 상담신청할 일이 없었다. 동갑인 미혼 선생님이셨는데 아이들에게 쏟는 열정이 대단하셨다. 담임선생님을 잘 만나서 정말 걱정을 하나도 하지 않고 학교를 보냈다.
2학년때는 아이를 전학시킨 해였다. 상담기간에 하필이면 코로나에 걸렸고 이상하게도 선생님은 전화를 주시지 않으셨다. 심지어 상담 신청도 받지 않으시고 출석번호 순서대로 전화를 주신다고 하셨기에 무슨 요일 몇 시경에 전화를 주신다는 건지 알 도리가 없기도 했다. 2학기때는 교사라는 입장 때문에 한 명이라도 신청을 안 하면 힘이 덜 드실까 싶어 신청을 안 했는데, 조금 후회가 들기도 했다. 엄마가 참 아이에게 관심도 없나 보다 싶으셨을 거다.
담임으로 있다 보면 굳이 상담이 필요 없는 어린이의 학부모님께서는 꼭 상담을 신청하신다. '굳이 상담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이가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이 예쁘다는 뜻이다. 물론 어머님께 아이가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목적으로의 상담이 진행된다. 하지만 이런 아이는 상담을 하든, 하지 않든 늘 열심히다.
그런데 문제는 어머님과 통화를 좀 해야 할 것 같은 아이들의 학부모님께서는 상담을 신청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다. 물론 상담이라는 것은 일 년 내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정해진 상담기간조차 연락이 없으신 부모님께는 보통 그렇듯, 일 년 내낸 먼저 전화 주시지 않는다. 아, 학교에 무엇인가 따질 일이 있을 때는 빼고 말이다.
그런 부모님께는 상담기간이 지나고 4월이나 5월쯤 한 번 전화를 드린다. 물론 아이가 어떤 걱정스러운 행동을 했을 때 겸사겸사 전화를 드리는 경우가 많다.
일년 내내 상담을 한 번도 신청하지 않은 나는 담임선생님께서 혹시 "상담을 신청해야 하는 아이인데 신청을 안하시는군."이라고 생각하실 것 같아 찔렸다. 그래도 문제 행동이 있었으면 전화주셨을 텐데 일년내내 그런 전화가 없었으니 그냥 잘 지냈겠지 하고 지레짐작만 할 뿐이었다.
드디어 3년 동안의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 드디어 학교의 많은 부분이 정상화되고 있다. 어제 하이클래스에 하이톡과 댓글로 상담을 신청해 달라는 알림장이 올라왔다. 이제 대면상담이 가능해졌고, 나는 휴직 중이고, 너무나도 상담 신청하기 좋은 때인데 손가락이 자꾸 떨린다.
일호에 대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어서 상담을 하고 싶다. 그렇지만 부정적 피드백을 들을까 봐 두렵다. 그래도 올해는 작년처럼 후회하지 않기 위해 꼭 상담을 가리라 마음먹는다.
교사로서 상담할 때의 나는 부정적인 말을 하지 못한다. 사실 그렇게까지 부정적인 아이도 없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가정에서의 돌봄이 필요한 친구에게는 에둘러 이러이러한 점만 보강하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곤 했는데 부모님들은 한결같이 전화를 끊을 때 "아이에 대해 걱정이 많았는데 잘한다니 마음이 놓이네요." 하셔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드신다. 나름 아이의 부족한 부분도 말씀드린 것 같은데, 너무 에둘렀나 보다. '잘하고 있다며' 마음을 놓아버리시면 안 되는데요, 속으로 외치곤 했다. 상담이 잘 된건지 아닌건지 아리송해질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교사로서의 학부모 상담 스킬이 너무나도 부족함을 느끼게 해준다. 아이들과는 잘 지낸다고 생각하는데, 학부모님들을 대하는 건 너무 어렵다.
학부모로서 나는 과연 아이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래도 아이가 고쳤으면 하는 부분은 꼭 알려달라고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지만 한편으로는 선생님께서 너무 직설적인 분이 아니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상담을 신청하면서 기대되는 점은 다른 선생님들이 어떻게 상담하는지 보고 싶기도 해서다. 일종의 '동료 수업 참관'처럼 '동료 상담 참관'의 기회가 될까 싶어 은근히 기대가 된다. 말주변도 없고 학부모님들과 소통하는 게 어려운 나는 다른 선생님들은 어떤 태도로 학부모를 대하시는지 무척 궁금하다. 아이들의 담임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벤치마킹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니 살짝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