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정신과 전문의들과 육아 전문가들이 그런 말을 한다.
"아이들의 감정 자체는 소중한 것입니다. 감정을 부정하지 말아 주세요. 감정을 받아주셔야 합니다."
아이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징징 댈 때 속은 부글부글 끓지만, 억지로 말한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엄마의 감정은 부정당해도 되는 걸까. 나의 감정도 소중한 것인데, 누구에게도 듣지 못하니까 내가 말해준다. "그래 그럴 수 있다. 그런 마음 드는 건 당연한 것이야."
하지만 전혀 당연해지지 않는다. 이런 감정들이 들 때마다 불편하고 한심하다.
3학년이 된 아이는 처음으로 임원선거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물론 우리 일호는 반장에 전혀 관심이 없다.
"엄마, 반장은 왜 하려고 하는 거야? 반장이 되면 좋은 점이 있어? 그냥 반장 된 사람 기분만 좋을 것 같은데."
"반장은 선생님을 도와서 반을 잘 이끌려고 되는 거지. 수업 시간에 발표를 아무도 안 하면 반장이 해야 되고, 아이들이 모두 하기 싫어하는 일은 먼저 하고, 오히려 아이들이 다들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양보하고."
"듣고 보니 반장이 더 하기 싫은데, 대체 애들은 왜 반장이 되고 싶어 할까?"
"글.. 글쎄."
그런데, 정말 하기 싫은 일은 자원하고, 하고 싶은 일을 양보하는 반장이 있을까? 그냥 반의 "짱"이 되고 싶어서 하는 아이들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짱이 되는 것에 큰 관심이 없는 아이의 모습이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 누군가는 반장이 되고 싶은 사람도 있으면 너처럼 되기 싫은 사람도 있어야지. 하기 싫을 수 있어. 괜찮아.
다음날 아이의 2학년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옆 반의 반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 반장 그까짓 게 뭐라고 안 하고 싶은 아이도 있는 거라고,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는데, 친한 친구가 반장이 되었다는 소식에 또 비교하는 마음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친구는 예쁘게 생겨가지고 남자애들이 많이 좋아한다면서? 남자들 표를 많이 얻었나 보네. 반장연설문도 얼마나 잘 써왔을지 보인다 보여. 엄마가 좀 극성이야. 3학년인 지금도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엄마는 전교에 그 엄마뿐일걸. 2학년 때도 놀이터에서 30분밖에 못 놀더니 지금은 바로 학원버스 타야 된다면서. 애가 얼마나 힘들까.
괜스레 그 아이는 얼마나 불쌍한가에 대한 토론이 내 마음속에서 순식간에 벌어지고 말았다.
그 친구는 행복할 수도 있는데, 아니, 그 친구는 행복할 것이다. 길에서 만나면 얼마나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는지 자주 봐 왔으니 알 수 있다.
내 마음속의 부정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하며 남의 아이를 갑자기 불쌍한 애로 만들고 말았다.
그러면서 또 우리 아이는 왜 반장선거에 나가지 않았을까,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선생님하고 아직도 하나도 안 친하다고 말하고 쉬는 시간에는 교실바닥에서 다리 찢기를 연습한다는 아이의 모습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영어도 수학도 싫고, 자기는 다 못한다고 말하는 모습도 자존감이 없어 보인다.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니, 다른 아이들보다 첫 스타트가 좀 느리고 그러다 보니 자기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단원평가도 그냥 실력대로 보고, 문제풀이라는 것 자체를 학교에서 하는 것 이외에는 하지 않으니 60점도 받아오고 80점도 받아온다.
갑자기 매직아이처럼 아이의 못난 부분만 공중으로 둥둥 떠올라서 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한다.
"엄마 민정이가 3반 반장이 됐대. 너무 잘됐지."
"응, 으으. 그.. 그래. 잘됐네. 너는 안 부러워?"
"왜? 반장은 힘든 거잖아. 민정이는 원래 발표도 잘하고 목소리도 크고, 친구들한테 양보도 잘하는 애라서 반장이 안 힘들 거야."
"너도 발표 잘하고, 양보도 잘하면 되잖아."
"3학년 되니까 발표가 하기 어려워졌어. 양보는 나도 원래 잘하기는 하지만 억지로 하는 거는 싫어. 친구들한테 양보하는 거는 반장 아니어도 할 수 있으니까 나는 그냥 지금처럼 사는 게 좋은데?"
"그래 행복하니 됐다."
발표가 쉬운 사람도 있고, 어려운 사람도 있는 법이다. 반장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절대 하기 싫은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내 아이가 "짱"이 되지 않았다고 학교 생활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친구가 반장이 된 것을 질투하지 않고 잘됐다고 말하는 아이의 예쁜 마음을 모른 척했던 나를 반성한다.
아이가 아니라 내가, 반장 엄마라는 타이틀을 얻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나는 아이를 통해서 나를 인정받고 싶어 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고 나니 내가 못나고 여전히 한심하지만, 아이를 탓하거나 못난 부분이 더 이상 확대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그 자체로 완전체다. 반장이 된 아이도, 떨어진 아이도, 나가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아이도 그 자체로 완전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