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의 반배정

변화에 대처하는 우리

by 새벽책장

열 살 아이의 반배정이 나왔다.

옆 동네 초등학교로 출근하는 나는 늘, 종업식날 전까지 동학년 선생님들과 모여서 심혈을 기울여 반배정을 하고 그걸 통지표에 가반, 나반, 다반 등으로 적어 보내주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의 학교는 최첨단 시스템(?)으로, 종업식날은 반을 알려주지 않고 2월 말에 학교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반 배정을 확인할 수 있다.

나 초등교사 맞나 싶었다. 이런 시스템 너무 좋잖아, 30분 거리밖에 안 떨어져 있는 우리 학교는 왜 80년대처럼 아직도 연필로 가반, 나반, 다반을 쓰고 있는 거지.

이렇게 좋은 건 서로 공유 좀 합시다.

아마 부장님들과 교감선생님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대부분 그렇듯이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기에는 조금의 용기가 필요하다.


처음 학교에 발령을 받고 느꼈던 감정은, 약 10여 년 전 졸업한 초등학교의 모습에서 크게 변화가 없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월요일마다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서 애국조회를 하고 있었고, 국민체조를 다 같이 했다.

다행히도 요즘에는 아이들을 운동장 땡볕에 세워놓지 않고, 많은 것들이 학습자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생각도 어쩌면 십 년 넘게 몸담고 있는 학교라는 시스템에 적응해 버린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신규교사들은 학교에 들어와서, "나 때랑 똑같잖아. 학교는 변화가 없는 곳이군."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다른 직군에 종사해 본 적이 없으니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학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거쳐갔던 곳이기 때문인지 유독 학교의 생활에 대해서는 모두 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지금 여기, 우리 학교가 아니라면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세세하게 알 수는 없는 일이다.

느리지만 서서히 변해가고 있으며 새로운 것들도 예전보다는 쉽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원격수업을 했을 때 학부모님들의 불만에 대해서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시절 나와 나의 동료들은 대면 수업보다 더 열심히 원격수업을 준비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려고 무척 노력했었다.

그러한 시행착오들 덕분에 온라인 플랫폼이나, 아이들이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발표 수업등에서도 큰 발전이 있었다. 최근 많은 시스템들과 플랫폼들이 개발되어 솔직히 늙은 나는 따라가기 벅찰 정도다.




1993년 초등학교 교사였던 우리 아빠는 나를 데리고 컴퓨터 학원에 함께 다녔다. 무료로 수업을 해주는 복지센터였는데, 앞으로 컴퓨터는 꼭 필요한 거니까 배워야 한다며 싫다는 나를 끌고 억지로 다녔다. 아빠는 컴퓨터를 열심히 배우셨고, 컴퓨터 초창기의 학교 수업 개선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을 하셨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라는 것에 스스로 대처를 해가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우리 삶 속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아빠의 그런 모습은 은연중에 나의 삶의 자세도 변화시켰을 것이다.


유독 나의 어린 시절은 내성적이고 소심했으며 환경의 변화에 민감했기 때문에 나는 늘 새 학기가 두렵고 힘들었던 기억이 많다. 지금도 나는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두려움이 많은 편이다.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기회를 놓치는 일도 많았고, 나중에서야 진즉에 할 걸, 이라는 후회를 할 때도 많다.

하지만 남편은 나에게 굉장히 실천력이 있다는 말을 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앞뒤를 안 가리고 해 버린다나. 재봉틀 배우기, 독서모임 하는 거나, 엄마표 영어 강의를 돈 주고 듣는 일들도 별로 망설임 없이 한다고, 돈 좀 펑펑 쓰지 말라는 것처럼 들리는 말들을 했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새 학기와 친구 사귀는 일은 두려웠지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에는 유독 두려움 없이 바로 질러버리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막상 해보면 별 것 아닐 때가 많지 않던가.

학교라는 커다란 시스템에서 무엇인가를 바꾸고 변화해 가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듯이, 나의 몸과 마음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나라는 인간의 시스템을 바꿔가는 일 또한 용기가 필요하다.

막상 바꾸고 나면 별 거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한 단계 성장할 것이다.




반 배정 결과를 보고 딸아이는 "작년에도 4반이었는데 또 4반이네." 하며 쿨하게 웃었다.

친구들은 몇 반 되었는지 안 궁금한지 물어보니, "그러네, 민채한테 문자 보내봐야겠다." 하며 자기 핸드폰을 들고 왔다. "엄마, 문자가 열 개가 와있어." 이미 친구들이 "몇 반 됐어?"라는 문자를 보냈던 것이다.

열 살의 어린이들도 자신의 새로운 생활에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했음이 보인다.

핸드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던 아이는 "엄마! 현주는 1반 됐고, 지윤이는 2반, 민채는 3반이래. 와 다 옆반이야. 좋네."라고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보기에는 담임선생님께서 친한 친구들을 갈기갈기 찢어놓으신 게 딱 보이는데, 뭐가 좋다고 실실 웃는지 모르겠다.

그때 아이의 친구 민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응, 민채야. 너 3반이라며 지윤이한테 벌써 들었어."

수화기 너머로 민채의 목소리가 들린다.

"응. 같은 반 안 돼서 서운해. 근데 괜찮아. 우리는 계속 같이 놀 거잖아. 아무 문제도 아니야. 그렇지?"

"우리 이따가 놀이터에서 놀래?"

친구와 만날 약속을 하고 놀이터로 달려 나가기 전에 아이는 나에게 물었다.

"엄마 선생님은 누구야?"

"선생님은 아직 미정이래."

"미정? 여자 이름 같은데 여자선생님인가?"

"?????"

아직은 머릿 속도 해맑고, 마음도 해맑은 아이를 바라보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우리는 여전히 친구니까, 다른 반이 된 건 아무 문제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민채가 우리 딸의 친구라는 것 또한 기쁘다.

열 살 아이들의 새로운 학기에는 새로운 과목,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이라는 변화가 아이를 성장시킬 것이다.

그렇게 아이의 새 학기와 나의 사십 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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