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얼마 전부터 게임을 시작했다. 드디어 게임전쟁인 건가. 적절한 규칙을 정하고 나름 절제력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한 판만 하는 데에도 30분 이상이 걸리니 우리가 정한 '하루에 30분 규칙'은 항상 지켜지기 어렵다. 어쨌든 게임을 하다가 중간에 끄기란 어른도 어려운 법이니까, 한 판이 끝날 때까지는 기다려주려고 한다. 좀 짧은 걸 하면 좋으련만, 주변에 형님들을 마주칠 기회가 많다 보니 형님들을 통해 자연스레 게임이라는 세계에 입문한 아이를 보면 속상하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으니 게임을 하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려 한다. 무조건 막는 것도 방법은 아니고, 대화를 많이 하는 관계를 통해서 아이의 절제와 통제를 키워줄 생각이다.
패드로 게임을 하던 아이가 하루는 자기 친구는 컴퓨터로 게임을 한다며 노트북에 게임을 깔아달라고 했다. 그래 어차피 컴퓨터는 배워야 할 것이니까 입학하면 방과 후 컴퓨터도 배우기로 했고, 그전에 자판 연습이라도 하라고 게임을 깔아줬다.
오늘 아침 일어난 아이는 드디어 첫 컴퓨터 게임을 게시한다는 즐거움으로 한껏 웃으며 글쓰기를 하고 있는 나의 노트북을 슬쩍 끌고 간다.
"엄마 저장 좀 하고!" 다급하게 저장을 하고 아이에게 노트북을 양보한 후 나는 아침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참기름 범벅인 김밥을 손으로 집어먹으며 게임을 하던 아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컴퓨터에 기름이 많이, 아니 조금 묻었어."
"물티슈로 닦아 줄래?"
물티슈를 뽁 뽑아서 닦다가 "안 닦으면 어떻게 되는데?"
"고장 나지."
"왜?"
"원래 기계에는 다른 게 들어가면 고장 나."
"기계는 그래?"
"응. 기계는 뭐 들어가면 안 돼."
"사람은?"
기계에는 다른 것이 들어가면 고장 난 다는 말에, 사람은 어떤지 묻는 아이의 눈은 게임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그 맞은편에서 책을 읽던 나의 눈은 크게 떠졌다.
웃음이 나면서 신선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는 뭐가 들어가면 고장 날까?"
"음..." 게임 화면에서 눈을 떼고 창밖을 바라보며 나름 뭔가를 열심히 생각하는 아이가 기특했다.
"음.. 바퀴벌레?"
갑분 바퀴벌레라니. 어이가 없었지만, 아이의 기발한 질문에 나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람에게는 무엇이 들어가면 고장이 날까.
과도한 관심, 잔소리, 고함, 매서운 눈빛.
이런 것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것들의 공통점이 보였다. 무엇이든지 더 많은 것이 들어가면 고장이 난다.
적당한 관심보다 넘치는 관심일 때, 불필요한 말을 삼키지 못하고 내뱉었을 때, 목소리를 적당히 유지하지 못하고 큰 소리를 낼 때, 평범한 눈빛이 아닌 과도한 눈빛을 발사할 때.
이런 것들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고장 나 버리기 일쑤다.
사람에게 바퀴벌레가 들어가면 안 되겠지. 과한 것들은 영혼의 바퀴벌레가 아닐까.
게임 한 판이 끝나고 컴퓨터를 팽개쳐 두고 거실로 가는 아이를 보며, 컴퓨터 끄는 것도 배워야지,라고 말하려다가 삼켰다. 곧 배울 수 있는 것들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말아야지.
어쨌든 끄라고 잔소리하기 전에 한 판만 하고 끝내는 아이는 비록 30분은 넘게 했지만 스스로 끝냈다는 성취감을 얻었을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무엇이든 과도한 참견으로 아이의 자라나는 통제력을 막는 것은 사람에게 바퀴벌레를 넣는 꼴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