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by 새벽책장

아파트 단지 내에 아주 넓은 잔디밭이 있다. 거길 들어갈라치면 어릴 때부터 학습되어 오던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문장이 늘 뇌리를 스친다. 그런 팻말도 없지만 왠지 하면 안 되는 짓인 것 같아 가슴이 뜨끔한 채로 가끔은 잔디를 밟는다.

잔디밭에 들어가는 이유는 결국 아이들 때문이다. 잔디밭에는 신기하게 잠자리가 많이도 날아다녀, 아이들과 잠자리를 잡기도 하고 축구를 하거나 배드민턴을 치기도 한다. 가끔 휴일에 집에서 내려다보면 어린 아들과 축구를 하는 아빠들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이 공을 차볼 수 있게 아빠들은 공을 열심히 몰아 아이 앞으로 보내준다. 조그만 발로 공을 차면 그걸 보는 아빠들은 보통 허리에 손을 얹고 흐뭇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거기를 가장 좋아하는 건 개들이다. 개라는 존재는 언제나 시선을 강탈하곤 해서 큰 개든 작은 개든, 검은 개 든 흰개든 한 번은 쳐다보게 만든다.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러움을 뿜어낼 수 있다니, 다음 생에는 개로 태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정말이다. 우리 집 개를 보면 하루에 20시간은 잠을 자고 있으니, 나로서는 그 녀석이 부럽다. 게다가 산책할 때면 다들 예쁘다고 해주니 가만히 있어도 자존감이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그리 예쁜 개한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아무 데서나 배변을 한다는 것이다. 동물이 아무 데서나 배변을 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결국 인간이다. 그걸 치우고 가느냐, 그냥 가느냐.


얼마 전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바로 앞 잔디밭에 한 아저씨가 귀여운 강아지를 끌고 산책을 나왔다. 역시나 그 녀석도 귀여워서 내 눈에 쏙 들어왔는데 뱅글뱅글 돌더니 똥을 싸기 시작했다. 수도 없이 봐온 똥 싸는 모습이라 딱히 눈살을 찌푸릴 일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다음에 일어났다. 아저씨는 그대로 자리를 떴다. 저기, 아저씨 그 똥 가져가세요,라는 말은 결국 하지 못했다.

그런 걸 봐버린 이상 그 잔디밭을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닐 용기가 사라져 버렸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걷다가 넘어지는 모습이라도 보게 되는 날에는 그 속 어딘가에 있을 똥이 떠올라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옛말에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이 있는데, 별생각 없이 사용하던 말이 요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개똥만큼 흔하게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것도 막상 찾으니 없다는 말인데, 요즘 세상에는 길에서 개똥을 보기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견인들은 대체로 상식적이 되어가며 개가 똥을 싸면 그걸 주워가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러니 아직도 개가 길거리에 싼 똥을 방치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뭐든 그렇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상식이 누군가에게는 비상식일 수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놀이터에서 간식을 나눠주면 어떤 아이는 쓰레기를 나에게 주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자기 호주머니에 넣는다. 또 어떤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그걸 버리는데, 뭐가 되었든 그건 가정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 아이의 부모가 어떤 사람일지 훤히 보여 내 자식의, 호주머니와 가방 안에서 쓰레기들이 튀어나올 때는 잘했다는 칭찬도 함께 나오게 된다.

내가 학교에서나 선생이지 동네에서는 그냥 아줌마니까 그런 아이들에게 일일이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럴 배짱도 없고 말이다. 그러니까 개똥을 그냥 두고 가는 아저씩에게도 무서워서 말 한마디 못한다.


누가 싸놓은 똥을 재수 없게도 밟게 되는 일, 그런 일들은 살면서 비일비재하다. 개똥이 흔히 보이는 것이 아닌 세상이 되어서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이 이상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러기에는 비상식이 판을 치니 아직은 조금 요원하다.

그리고 나는 남이 버린 쓰레기는 주워도 남이 싼 똥까지 치우기는 싫다.

제가 싼 똥은 제가 버렸으면 좋겠다.

그래도 개는 언제나 귀엽다. 개는 잘못이 없고, 어린이도 그렇다.


개를 보고, 자식을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다니 이야말로 개똥철학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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