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 잘살자
작년에 큰 아이가 말할 때마다 "엄마, 내가 할 말이 있는데, 아 어쨌든, 그때 선생님이 퀴즈를 냈는데. 근데, 있잖아. 어쨌든 어쩌고 저쩌고." 문장 안에 어쨌든이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사용하는 시기가 있었다.
듣기 싫을 정도로 어쨌든을 갖다 붙이는 아이와의 대화가 불편하던 와중에, 내가 남편에게 어쨌든을 계속 사용하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 주먹으로 입을 막았다. 아, 내 말투가 남편 듣기에도 꽤나 짜증스러웠겠구나. 그리고, 아이는 내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구나.
또 한 번은 둘째가 "아, 뭔 소리야."라는 말을 써서 혼을 냈다. 엄마한테 무슨 말버릇이 그래. 그래놓고 나중에 아이와 대화하다가 내 목구멍에서 나오는 "아, 뭔 소리야."를 듣고 깜짝 놀랐다.
아이들은 나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한다. 아이를 보면 내가 보인다는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실감 나면서 내 말버릇부터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
우리는 명문대에 입학하면 자식 농사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조차도 자식이 명문대에 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런 마음이 무겁게 느껴져 계속 육아서와 인문학, 심리학 책을 찾아 읽는다. 내 마음을 정돈하려고. 그런데 아직도 나는 책은 읽을 때뿐이고 언행일치가 잘 되지 않아 육아가 어렵다.
그리고 아마도 명문대는 못 갈 것 같아서 계속 합리화한다.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학벌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 올 것이다. 나는 아이가 좋아하면서 잘하는 일을 행복하게 했으면 좋겠는데, 사실 좋아하면서 잘하는 일을 찾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어떤 쪽에 특출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기에 평범한 내 자식이 어떤 삶을 살지는 스스로 결정할 일이며, 단지 나는 그 아이의 마음밭을 조금 더 풍성하게 해주는 의무만을 다하는데 나의 육아의 목표를 두고 있다. 공부는 기본만 해도 된다. 그런 생각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말했듯이 공부를 잘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러나 공부만 잘하는 아이로 크지 않기를 바란다. 공부와 마음밭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무조건 마음밭이 튼튼한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백세 시대에 그것이 더 성공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요즘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그분. 그의 잘잘못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할 마음은 없다. 내가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미 분노하고 있으니까.
나는 피해자의 마음이 안쓰럽다. 혹시 이번 일로 그날의 상처가 다시 상기되어 힘들지는 않을지. 아니면 끌어내려졌으니 조금은 시원한 마음이 들지. 나 같으면 더 바닥으로 끌어내리기 위해서 문동은처럼 처절하게 복수하고 싶을 것 같은데, 학업을 계속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기사의 마지막 문장에 마음이 쓰리다.
나는 피해자도 아닌데, 이렇게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지고 만다. 그는 가해자가 서울대에 붙었을 때 얼마나 허탈하고 세상이 원망스러웠을지, 괜히 나와는 관계도 없는 사람이지만 마음이 아프다.
고위공직자가 되거나 유명인이 되려면 바르게 살아야 한다. 요즘 아이들 중에 아이돌을 꿈꾸는 친구, 유튜버가 되고 싶은 친구들이 많다. 그래서 교실에서는 항상 말한다. 너희가 그런 유명인이 되려면 지금부터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요즘 인터넷이 너무나도 발달해서 너희들의 조그만 잘못도 나중에 화근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학교폭력예방교육 시간에 꼭 덧붙이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폭은 매년 모든 학교에서 몇 건씩 일어난다. 그런데 유명인이 되지 않는다면 막 살아도 될까. 결국 누구에게 보이는 삶이 중요한 게 아니고, 나 스스로에게 당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까, 그리고 내 모든 행동을 나의 자식들이 보고 있으니까 잘 살아야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같이 키워야 한다는 말은 바로 그런 의미일 것이다.
부모를 보면 아이가 보이는 경우는 학교현장에서 너무나도 흔히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이걸 '콩콩팥팥'이라고 부른다.
재작년에 우리 학급에서 학폭신고가 발생했다. 초등저학년 여학생들이었는데, 세 명이서 단톡방을 만들어서 한 명에게 욕을 했다. 욕을 한 두 친구는 항상 말이 없고, 얌전한 친구들이어서 너무 의외였다. 피해자 부모님께서는 가해자 부모님이 사과를 하면 넘어가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중에 한 분은 사과를 하셨지만 다른 한 분은 사과를 하지 않아 결국 교육청까지 넘어갔다.
아이들은 욕을 할 수 있다. 단톡방을 만들어서 한 명을 공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잘못한 일이라는 걸 인지하고 다시는 하지 않으면 된다. 누구나 실수는 하는 법이고, 어린이들은 반드시 실수를 해야 성장도 할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던 부모들이었다. 아이가 잘못한 것은 인정하는데 부모인 자신들이 사과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며 도리어 큰소리쳤다. 나는 속으로만 '아이가 잘못했으니까 부모가 사과할 수도 있지. 왜 저렇게 모욕당한 것처럼 행동하지.'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잘못한 게 맞으니까 사과를 하시겠다고 하던 다른 한 명의 어머님은 속이 상하긴 하셨겠지만, "우리 아이가 잘못한 거 맞으니까 만나서 사과를 하고 싶습니다." 하셨고, 이 말 한마디에 피해자 어머님은 화가 다 풀리셨다. 만날 것까지는 없고 통화한 번 하면 될 것 같다며 통화하시고 푸셨다. 그 후로 아이들은 다시 잘 놀았다.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았던 친구의 아버지는 심지어 피해자가 잘못해서 욕을 한 것이고, 우리 애는 그 애와 친구가 아니니 앞으로 둘이 떨어트려 놓아 달라는 말을 했다.
아이들의 앞날을 저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의 앞으로가 심히 걱정되었다. 일 년 내내 한 번도 내 눈을 마주 보고 종알종알 말한 적이 없던 아이였다. 저학년 특성상 선생님에게 쫑알대는 귀여움이 없는, 뭔가 벌써 6학년 여학생 같은 느낌이 풍겼다고 할까.
요즘 뉴스를 보면서 그 친구가 떠오를 때마다 나의 잘못된 편견이고 오지랖이길 바랄 뿐이다.
나도 내 자식을 잘 키우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우니 남의 자식일에 입 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내 자식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대처만큼은 바람직하게 하는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은 해 보려고 한다.
뉴스에 나오는 그분의 과거 학폭에 대한 대처가 과연 자식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나의 작은 말습관조차도 따라 하는 아이들인데, 나의 생활방식도 따라 하겠지. 그래서 나는 아이를 키우기 전에, 나부터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돌아보고 돌아보지만 과연 잘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섬뜩하다. 자식을 낳지 않았다면 대충 살다 죽어도 상관없을 텐데. 나랑 똑같은 인간을 키운다는 게 무섭다. 자식이 나보다는 성숙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지만 그게 쉽나.
그러니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