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에는 8살 꼬마 아가씨가 산다. 만나면 항상 반갑게 인사하는 눈웃음이 매력적인 그녀는 우리 딸의 놀이터 메이트다. 놀이터에서 만나 친해진 동네 동생이 윗집에 산다니 심히 반갑고 재미있는 인연이다.
INFJ인 엄마는 동네 친구는커녕 혼자 놀기의 달인이라 같은 벽을 공유하는 이웃과 친해지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엄마와 반대의 성향을 가진 딸은 앞동, 옆 동 친구를 모아 우리 집을 아지트 삼아 놀러 다니고, 누나를 따라 둘째 아이도 청일점으로 여기저기 끼어 다니기 바쁘다.
오늘은 우리 아이들이 윗집으로 놀러 간 날이다. 윗집 할머니께서 매번 우리 집에 아이를 보내는 게 미안하셨는지 오늘은 아이들을 올려보내라고 하셔서 1시간만 놀기로 했다.
귀를 쫑긋하고 윗집의 동태를 살핀다. 별로 시끄럽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느낄 수 있다.
한 때는 층간소음 때문에 필로티나 단독주택을 알아보러 다닌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층간소음의 가해자였다.
새로 이사 온 주말부터 매일 끊임없이 울리는 인터폰 소리에 심장이 쿵쾅거리고 괜스레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게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온 집안은 놀이매트로 쫙 깔렸고, 일주일에 한 번 매트를 들고 청소를 해도, 그 잠시 청소하는 낮 시간조차 인터폰이 울리기 일쑤였다. 주말 낮에 청소기를 돌린다고 인터폰을 하는 아랫집을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나, 쌍욕이 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우리 윗집 소음에 귀를 열어보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윗집에 소음이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던 나는 우다다다 쿵쿵쿵 거리는 아이의 뜀박질 소리와 어른들의 발 망치 소리가 명확히 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윗집은 매트도 안 깐 것 같은 울림인데, 이 정도는 괜찮은 거 아닌가? 오히려 그동안 들리지도 않던 윗집과 우리 집을 비교하며 시도 때도 없이 인터폰을 해대는 아랫집에 대한 미움이 가득 쌓였다.
우리 집 애들은 뛰지도 않고 매트 위에서 종종종 걸을 뿐인데, 정말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래, 소음과 고통에 대한 임계치는 사람마다 다른 법이니까 아랫집 사람들은 많이 예민해서 힘든가 보다 이해하고 최대한 조심히 생활하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은 매트를 들고 청소를 한 후에 매트를 잠깐 세워 놓은 적이 있다.
하원한 둘째 아이가 까치발로 다니다가 힘들었던지 "엄마 매트 깔아주면 안 돼? 다리가 너무 아파." 라며 주저앉아서 자기 다리를 주무르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매트도 안 깔려있었는데, 잠깐이지만 인터폰이 울리지 않은 것이다.
6살짜리가 이렇게 조용히 걸어 다닐 수 있다니. 인간의 한계란 어디까지인가, 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아랫집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 온 걸 알게 되었다.
어, 언제 이사 간지도 모르게 이사를 가버린 것이다.
아싸. 이사 갔다.
몇 달 동안 인터폰을 받지 않고 지내긴 했지만, 약 2년간 언제 인터폰이 울릴지 몰라 조마조마했던 나의 마음이 한순간에 무장해제되었다.
기쁜 생각도 잠시, "어? 우리 집이 너무 시끄러워서 가신 걸까?"라는 의문이 스쳤다.
그러기엔 정말 많이 조심하고 사는 집이다. 최근에는 인터폰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그냥 전세가 만기 되어서 가신 걸로 결론을 내렸다.
새로운 아랫집이 이사 온 걸 알게 된 주말, 딸기를 아랫집 문고리에 걸어두고 왔다.
아랫집 어머님께서는 감사하게도 본인들은 예민하지 않으니 어느 정도의 소음은 괜찮다며, 심지어 이사 오고 며칠이 지났지만 윗집에 아이들이 사는 줄도 몰랐다고 하셨다.
거실의 놀이매트는 그대로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들이기에, 순간적으로 쿵쾅거릴 수 있다. 늘 조심하고 살지만 마음은 그 전보다 여유로워졌다.
지금 윗집은 여전히 쿵쿵거린다. 나는 괜찮다. 우리 집에는 수험생도 없고 아픈 환자도 없으니까. 이 정도 생활 소음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가끔 예전 아랫집 식구들은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가서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 탑층으로 가셨길 바란다.
예민함의 정도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조금만 이해하면 다른 사람도 아닌 내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이다. 남을 위해 배려하는 게 아니고, 나를 위해 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