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휴직입니다.

by 새벽책장

휴직 1년 차다. 둘째 녀석이 내년 초등학교에 입학이라 많은 고민 끝에 휴직을 하기로 했다. 남들은 부러워하는 초등학생 자녀 육아 휴직. 그러나 생각만큼 그렇게 꿀 같지는 않다.


일단 돈이 없다. 그런데 애들은 초등학생이고, 배우고 싶다는 게 많아서 돈이 많이 든다. 피아노, 발레, 수영, 바이올린. 나 어릴 땐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것도 감지덕지 였는데, 이런 걸 다 배우면서도 또 미술학원도 보내달라고 난리다.

아, 절대 수학, 영어 학원은 다니겠다고 하지 않는다. 그래 뭐 어차피 학원 전기세만 내주러 다니는 것을 이 엄마는 잘 알지.

그리고 대출금과 이자. 언제쯤 대출금을 청산할 수 있을까. 이 집이 오롯이 우리 집이 되는 시기는 나의 휴직기간이 길어지면서 기약 없이 멀어질 뿐이다.


둘째, 엄마의 자존감이 조금씩 하락한다. 전업주부의 삶을 동경했는데, 막상 전업주부로써 살려니 밖에 나가면 자꾸 쭈그리가 된다. 그렇다고 일할 때 뭐 자존감이 뿜 뿜 했냐, 생각해보니 직장에서도 자괴감에 빠졌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근근이 겨우겨우 내 할 일을 해 낼 뿐이었지, 대단한 성과를 올렸던 적이 있었나 싶다.



요즘 시어머님과 통화할 때마다 듣는 말이 있다.

-아휴 나는 니가 노니까 너무 좋다. 애들 챙기고 출근하고 매일 정신없었는데, 니가 노니까 내 마음이 너무 편해.

아, 나 노는구나. 현실 자각 타임이 오고 나면 솔직히 모난 돌처럼 뾰족해진다. '진짜 노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고 싶다.


그런데 좀 억울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놀지 않는다. 너무 피곤해서 저녁마다 빨리 애들을 재워버리고 싶을 지경이니까. 그래서 더 복직에 대해 갈등했는지도 모른다. 워킹맘과 전업맘일 때 아이들에게 투자되는 시간의 양은 크게 변한 게 없고, 집안 청소나 알뜰살뜰 살림하는 것도 더 나아진 건 없다.

집안 경제도, 아이들 교육에 헌신하는 바도 오히려 더 뒤떨어진 느낌이다.

그래도 둘째의 초등 입학은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에, 복직이 쉽지 않다.


며칠 전 둘째 이름으로 휴직 서류를 제출하고 왔다.

집에 와서 원격 업무 시스템에 접속하려고 보니 원격 업무기간이 만료되었다.

이런,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대리 신청을 부탁해야 한다.

아, 담당자와 친분이 없는데.

그래도 그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런 일로 부탁드리기는 매번 껄끄럽다. 그래서 만료되기 전에 핸드폰 메인 화면에 11월 안으로 갱신하자고 써놓고, 이렇게 또 잊어버렸다.

휴직자도 너무 바쁘다.

왜,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하는지 알겠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을 뿐, 다들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애들 등교 등원시키고 나면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면서 동시에 건조기에서 나온 빨래를 갠다.

개 아들 때문에 집안에 개털도 심각하다. 하루에 청소기와 돌돌이를 20번쯤 돌린다. 그래도 짱 박혀있던 개털은 어디선가 계속 굴러 나온다.

설거지를 하고 택배 상자를 정리하거나 온라인으로 마트 배송 온 물품을 정리하다 보면 큰아이가 하교한다.

하교 후 다행히 피아노 학원에 가지만 가끔은 엄마가 교문 앞에 나와달라는 부탁을 외면할 수가 없다. 그러려고 휴직한 거니까. 오전밖에 안 지났는데, 정말 피곤하다. 그리고 해놓은 건 사실 하나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일들뿐이다. 그러니 보람도 없고 힘만 들뿐이다.


정말 짬을 내서 뜨개질을 하거나 책을 읽으면 금세 둘째 하원 버스를 맞으러 달려가야 한다. 이때 자전거나 킥보드는 필수품이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또 전쟁 시작 아니겠는가.

그러니 휴직자의 삶이라고 크게 편하거나 쉬는 게 절대 아니다.

그래도 워킹맘들보다야 덜 동동 거리긴 한다. 동동거림이 하나 빠졌을 뿐인데, 마음의 쪼들림은 덜하다. 이 마음의 쪼들림 때문에라도 휴직자의 삶이 워킹맘의 삶보다 낫긴 하다. 물론 돈의 쪼들림은 못 본척했을 때 말이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원격 업무 대리 신청을 부탁하러 핸드폰을 켜야겠다. 정신없었을 오전 타임을 무사히 끝마치고 퇴근을 기다리시는 담당자분께 또 일거리를 얹어 드리는 것 같아 무척 죄송할 따름이다. 바쁜 연말에 일하시는 분께 휴직자의 부탁은 정말 귀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죄송한 마음을 스벅 커피 쿠폰과 함께 보내드리면 그나마 좀 마음이 편할까. 내 마음 편하자고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을 쿠폰에 담아 보내본다.

휴직자란 안팎으로 미안한 일이 참 많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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