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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Apr 07. 2023

우리 교회 나오셔

안 가요

"띵동 띵동"

구몬 선생님 오시려면 아직 십분 남았는데, 일찍 오셨네, 하면서 확인도 없이 문을 열었던 것이 나의 실수였다. 문 앞에는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할 때 가끔 뵈었던 할머님 한 분이 서계셨다. 문을 열자 할머니께서는 밝게 웃으시며 다짜고짜 "우리 교회 나오셔."라고 하셨다.




나는 모태신앙인이었다. 모태신앙이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 엄마가 미혼시절부터 성당에 다니고 계셨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태어나자마자 모태신앙인이 되어버렸다. 세상에는 의지대로 살아지지 않는 것들이 많지만 나에게는 종교도 그랬다.

그렇게 나는 고개도 가누지 못할 때 세례를 받았고, 심지어 내가 고를 수도 없었던 세례명을 가졌다. 이름도 내가 짓지 못하는데, 초등학교 때 세례를 받았던 성당친구들은 자기들이 세례명을 스스로 짓는 걸 보고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아무튼 나도 스텔라나 이사벨라 같은 세례명이 갖고 싶었다.


살면서 기도를 많이 했다. 그런데 그 기도라는 것은 주로 "하느님 저 이렇게 되게 해 주세요. 저 이거 해주세요. 저거 안되게 해 주세요."같은 것들이었고,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았다.

엄마가 들으면 지금 내가 이만큼 된 게 다 누구 덕인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하실지도 모른다. 눼눼, 엄마의 기도 덕분이고, 주님의 높으신 은혜 덕분입니다.


신혼 초까지 성당에 열심히 다녔다. 첫 아이를 낳았고 아이가 중환자실에 들어가자 성당에서 매일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드렸다. 아이 중환자실 면회를 마치고 나면 병원 안에 있는 성당에서 미사가 있었다. 매일 거기 들러서 기도를 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나의 기도는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문 앞에 서 계시는 할머니께서는 계속 말씀하신다.

"우리 교회 나오셔. 이번주가 부활절이에요. 연예인도 오고 우리 교회가 커. 그래서 사람들도 많고 애들이 같이 놀 친구도 많아요."

"아니에요. 저희는 교회 안 믿어요. 죄송합니다." 문을 닫으려고 하면 또 말씀하신다.

"전에 믿음생활 하셨어?"

"네. 이제 안 믿어요."

"왜요?"

"그건 개인적인 사정이라 말씀드리기는 그렇고요. 저는 마음이 없어요."

"아이고. 시험에 으셨구먼."

"네. 저희는 주말에 시간도 없고요. 죄송합니다."

"시간이 왜 없어요. 조금 부지런하면 되는데. 우리 교회 나오셔."

"아니에요. 믿을 마음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죄송하다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리다 보니 구몬 선생님이 오셨기에 할머니께서는 어쩔 수 없이 돌아가셨다.

같은 아파트 주민이라 매몰차게 거절할 수가 없었는데, 돌이켜보니 나는 뭐가 그리도 죄송하다는 건지, 조금 짜증이 솟구쳤다.

할머니의 눈빛은 '쯧쯧. 젊은 여자가 싹수가 없으니 시험에 들지.' 같았고, 그러거나 말거나 싶다가도 모르는 사람에게 엉뚱한 오해 따위를 주는 상황이 기분 좋지 않았다.


자식을 잃고 나면 더욱 종교에 매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정반대였다. 그렇게 열심히 성당을 다녔는데도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마저 빼앗아 가버린 신이라면 그런 신은 별로 믿고 싶지도 않고, 차라리 없다고 생각하는 게 내 마음이 더 편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도 원망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다. 누구도 타인을 알 수는 없는 법다.


우리 아빠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성당에 다니지 않으셨다. 그때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서 신축 성당을 지으면서 수녀님들이 각 가정에 방문해서 헌금을 모금하셨는데, 그게 아빠 화가 났다고 한다. 몇 백만 원씩 기부하라는 말을 하는 종교인에게 환멸을 느꼈다나. 그럴 수 있었을 것 같다. 각자의 사정은 모두 다르니까.


이제 내가 성당에 나가지 않자, 아빠가 성당에 다시 다니기 시작하셨다.

퇴직하시고 부모님이 시골로 농사지으러 떠나신 후에 두 분이서 주말마다 성당에 가시는 모습은 보기 좋다. 이제 나도 안 나가는 성당을 아빠라도 같이 가주시니 엄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하실 거다.

엄마는 내가 성당에 나가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으니, 평소 같았으면 성당 나가라고 매주 전화했을 엄마가 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성당에 나가라는 말을 하지 않고 계신다.


아이들에게도 종교를 선택할 자유를 주고 싶다. 교회에 가고 싶다면 가보라고 할 것이고, 절에 간다면 가라고 할 거다. 마음이 흐르는 데로 두고 흘러가는 게 가장 좋을 때도 있다.

억지로 하는 일들은 종교 말고도 많아서 정말 바쁘다. 주말에 부지런 떨면 교회에 나올 수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대로 나는 주말에도 여전히 부지런하게 할 일이 많다.

행복이 있는 곳이라면 꼭 어딜 가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살아보니 행복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기도 한 것이니까 말이다.


타인에게 무엇이든 강요하는 것이 싫다. 그 타인은 내 자식도 마찬가지다. 이 나이 먹어도 누가 "교회 나오셔"하니까 교회에 더 가기 싫어지는데, "방 좀 정리해라.", "독서록 써라.", "구몬 할 시간이야!" 따위의 말들을 들으면 하려고 하다가도 하기 싫어질 게 뻔하다. 알면서도 목구멍이 먼저 열서 탈이지만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입술을 깨무는 일. 오늘도 힘내서 입틀막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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