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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Apr 18. 2023

당근마켓의 펫시터

당근마켓에는 없는 게 없다.

이번에는 펫시터다.

2박 3일로 캠핑을 떠나기로 했는데 애견 동반이 불가였다.

그래서 남편은 펫시터를 찾아보았고 2만 원에 2박 3일을 맡아주신다는 분께 녀석을 맡기고 왔다. 너무 저렴한 것 같아 3만 원 드리자고 해서 아이고 은생각이라고 칭찬해줬다.

이런 건 이토록 유연한 사고가 가능한 남편인데, 왜 집에서는... 음 말을 아낀다.




작년에 제주도에 간 일이 있다. 문제는 반려견 초코였는데 아이들의 고모, 즉 나의 시누이에게 맡기기로 남편 혼자 결정하고 초코를 데려다주었다.

고모는 가까이 사는 것도 아니다. 다른 지역이라 1시간 30분은 달려야 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고모부가 꽤 어렵고 불편하다. 그래서 맡기고 싶지 않았는데 남편이 괜찮다고 해서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계속 초코사진이 전송되었다.

산책하는 사진, 조카와 노는 사진, 자는 사진.

좋은데 너무 자주 전송되는 사진으로 인해 남편은 피로를 느꼈다. 아, 나한테 안 보내신 것에 감사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날은 초코가 커튼에 쉬를 해놓은 사진, 고모와 고모부가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서 커튼을  빠는 사진.

이쯤 되니 죄송해서 몸 둘 바를 몰랐지만 나한테 보낸 사진은 아니니까 사과는 남편이 하는 걸로 치기로 했다.

제주도에서 몇 가지 유명하다는 간식거리를 사서 초코를 데리러 갔다. 집으로 당장 가고 싶었지만 여독이 풀리지 않은 채로 시누이네 집에 가는 것이 사실은 귀찮았다. 그리고 커튼에 오줌 싼 이야기를 몇 번 더 듣고 돌아오며 조카에게 용돈을 쥐어주고 차에 탔다.


이제는 초코를 데리고 다니던지, 애견 호텔에 맡기자고 남편과 합의를 했다. 남편도 누나의 초코 사진 테러가 꽤 힘들었던 모양이다.




차로 십 분만 가면 되는 곳에 펫시터 그녀가 살고 있었다. 집에는 7개월짜리 푸들도 한 마리 키우고 계신다고 한다.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인상이 푸근하다.

떠나 있던 2박 3일 동안 초코의 사진은 단 한 장도 전송되지 않았다.

믿고 맡기는 거라, 딱히 불안하지도 않았고, 초코 녀석이 말썽을 부리는 스타일도 아니라서 그런 쪽으로는 더욱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집 앞으로 녀석을 데리러 갔다. 녀석은 마치 주인과 함께 산책 나온 마냥 여유롭고 느긋한 표정으로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누가 보면 우리는 그냥 동네 주민으로 보일 법했다.

약간 서운했지만, 그만큼 그 녀석이 잘 있었다는 반증이었으므로 개와 물품을 담은 쇼핑백을 받아 들고 인사를 나누며 돌아섰다.

집에 돌아와서 쇼핑백에서 녀석의 물품을 정리하다 보니, 서비스라며 초코의 삼계죽이 하나 들어있었다.

이 녀석 아주 귀여움을 받으며 잘 지냈나 보군, 싶어 웃음이 나오면서 요즘은 참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남의 집에서 나름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집에 돌아오고 하루를 꼬박 잠만 잔다. 안 그래도 포동포동한데, 살이 더 찐 거 같기도 하고. 펫시터 분이 주신 삼계죽은 올해 초복에 먹여야겠다.

초복을 기다리는 개라니.


나는 인복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동네에서 만나는 펫시터분까지 좋으시다.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인지, 녀석이 운이 좋은 개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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