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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Apr 25. 2023

둘인데도 다르다

우리 집 일호는 국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해서 국물만 좋아한다. 건더기는 도통 먹지를 않는다. 반면 이호는 건더기를 좋아한다.

남편은 국물만 꽉 짜서 먹는 식습관이 있다. 어머님이 보실 때마다 잔소리를 하신다. 국물은 짜니까 건더기를 먹으라고. 나는 국물보다 일단 건더기를 건져먹는 편이다.


고기를 잘 먹는 일호는 아빠의 식습관을 많이 닮았다. 신기하게도 임신기간 중에 원래 좋아하지 않던 고기가 그렇게도 먹고 싶었다.

야채를 좋아하는 이호는 나의 식습관을 닮았다. 오이, 알배추, 당근 같은 생야채를 가장 좋아하고 콩나물 반찬만 있으면 밥 한 공기 뚝딱이다. 이호를 임신했을 때는 샐러드를 그렇게 먹었다.

그런 걸 보면 참 신기하다. 먹는 습관까지 유전된다는 것 말이다. 나는 고기를 무척 싫어하는데, 내가 성장기 때 고기만 잘 먹었어도 배구선수가 됐을지도 모른다.


외모는 또 반대다. 일호는 나를 닮았고, 이호는 아빠를 쏙 빼닮았다. 어쨌든 아이 둘이 나를 이쪽저쪽으로 닮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닮았다는 것은 가끔 호러물을 보는 느낌이 들게 한다. 소름이 끼친다고 해야 할까.

나는 내가 꽤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안 닮았으면 좋겠는데, 남편은 더 안 닮았으면 좋겠다.




우리 집에서 제일 안 닮은 사람은 짐작대로 우리 부부다. 

사람들에게 전화하기 좋아하는 그와 전화 울렁증이 있는 나.

설거지는 빨리 해치우는 게 좋은 나와 나중에 하겠다고 뭉개는 그.

쉬는 날은 나가고 싶어 하는 그와 집순이 나.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왜 결혼을 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그러다 보니 의견충돌이 종종 발생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갈등을 싫어하는 내가 참고 만다. 모르겠다. 그도 참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내가 볼 때는 그는 하고 싶은데로 해버리고, 내 의견은 잘 묻지를 않는다. 


결혼 전에 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서울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리고 차를 다시 탔는데, 우리가 사는 지역으로 돌아오는 길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가고 있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어디 가는 거예요?"

"내 친구 만나러 가요."

"누구요?"

"00이요."

"근데 왜 말을 안 했어요?"

"???"

"???"

같이 있는 사람에게 또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갈 거면 당연히 이야기를 하고 가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그때 일이 굉장히 자주 떠오른다. 살면서 비슷한 일들을 자주 겪기 때문이다.

주말부부인 요즘에는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남편이 기차를 타고 광명역으로 오는데, 그때 내가 차를 끌고 데리러 가야 한다. 아이들 시간에 맞추려면 피해야 하는 시간대가 있기도 하고, 안 그러면 큰아이가 발레 학원에 혼자 가거나, 머리를 못 묶어주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기차표를 보통 일찍 예매하니까 바로 알려주면 좋으련만, 금요일 기차를 타고도 말을 안 해줄 때가 있다. 그럼 도대체 몇 시에 광명역으로 나가라는 말이냐. 어떨 때는 말을 안 하는 그를 보며 나도 가만히 있다가 버스 타고 오도록 내버려 둘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주 전형적인 자기중심주의자다. 그래서 나는 참 답답하다.


서로 마음에 안 드는 일이 한두 가지는 아니겠지. 

나도 내가 마음에 안 들 때가 있으니, 함께 사는 남들은 더욱 마음에 안 들 때가 많다.

사랑으로 낳은 자식들은 다 마음에 드는가? 솔직히 마음에 안 드는 일 투성이다.

그들도 내가 마음에 안 들겠지.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같이 사는 걸까.

사랑하기 위해서 아이를 낳았으니, 사랑만 해주고 싶은데, 그놈의 사랑하기가 나는 힘들다.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네 사람은 꾸준히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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