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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Apr 26. 2023

눈치보다 늙어버렸네

7cm 힐을 신었을 때 다리가 제일 예뻐 보인다고 그랬다.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전 이야기다.

그래서 이십 대 초반 대학생이던 나는 7cm짜리 굽의 하이힐을 샀다. 그걸 신고 밖에 나갔을 때 기분이 너무 좋았다. 또각또각 구두굽 소리도 경쾌했다. 하지만 동네를 벗어나기도 전에 발가락이 아팠다.

마을버스를 탔는데, 앉을 자리가 없어서 서서 갔다. 이런, 버스 안에서 내가 제일 컸다. 점점 어깨가 굽어진다. 왜 남자들이 다 내 밑에 있는 거지. 이걸 신으니 나는 175cm쯤 됐을 거다. 그래도 한두 명은 나보다 커야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날따라 다 나보다 작았다.


이후 그 구두는 다시 신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남의 눈을 의식했을까, 그렇게 다 해보고 싶던 이십 대에, 나는 남자들보다 작기 위해서 늘 플랫을 신고 다녔다.

소개팅에도 무조건 플랫을 신고 나갔다. 웬만하면 플랫을 신어야 남자분이 나보다 컸다.

그런데 왜 남자보다 여자가 크면 안 되는 거야,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도 찾을 수 없다. 그냥 여자보다 남자가 커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 똘똘 뭉쳐 있기에 그 벽을 깨부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런 질문조차 던져본 적이 없었다.

플랫을 신고 나간 소개팅에서 드디어 결혼할 남자를 만났는데, 아뿔싸 170cm라고 한다. 남자가 자기 키를 170cm라고 말한다면 그건 아마도 168이나 169일 확률이 99.999% 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눈에 씐 콩깍지는 그를 180cm로 착각하게 만들었고, 결혼식에서조차 나는 플랫을 신었다. 웨딩드레스에는 무조건 7cm를 신어줘야 조금이라도 더 비율이 살아나는 법이거늘, 무엇을 배려한다고 그랬을까.

내가 결혼식에 하이힐을 신었다면 남편도 엄청난 키높이 구두를 신어야 했을 거다.


지금은 신으라고 해도 무릎이 아파서 신을 수가 없다. 그래도 욕심은 버리지 못했다. 출근할 때 예쁜 치마나 슬랙스 바지에 7cm까지는 안되더라도 5cm 정도는 신고 싶다.

현실은 주야장천 운동화지만.

 



무심히 흘려버린 젊은 시절이 조금 아깝다.

그때 꼰대들이 그랬다. "니 나이 때는 뭘 해도 예쁘다."

나는 지금 꼰대가 되어 말한다. "그 나이 때는 뭘 해도 예쁘다."

그래도 그 나이에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은 응원하고 싶다. 사실 그때는 너무 하고 싶었지 않았나. 엄마 매니큐어를 몰래 발라보거나 립스틱을 발라보는 일 같은 거 말이다.

몰래 하니까 더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길에서 만나는 중학생 어린 여자애들이 나보다 더 진하게 메이크업을 하고 지나가도 이제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예쁘다. 누구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닌데 실컷 해보기를 권한다.


남들 눈치를 보느라 신어보고 싶던 하이힐을 신어보지도 못하고 나이가 들어버렸다.

분홍색으로 염색하고 싶지만 눈치가 보여 할 수가 없다.

아직도 핑크를 좋아한다. 마흔이 넘고 일부러 무채색을 고르려고 하지만 핑크에 눈이 먼저 간다. 자제를 하며 여전히 눈치를 본다. 그런데 나이 든 여자는 핑크를 좋아하면 왜 안되지.


어제는 딸아이와 매니큐어를 발랐다. 딸이 그린과 핑크의 조합이 예쁘다며 녹색매니큐어를 사달라고 했다. 눈치 볼게 뭐람, 나도 발라본다. 이걸 바르고 자판을 누르니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도 아이를 데리러 나가기 전에 지울까 말까 잠깐 고민한 나는 여전히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본다. 그렇지만 용기 내어 지우지 않고 놀이터에서 다른 엄마들을 만났다.

역시 아무도 내 손톱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 그만 눈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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