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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Apr 30. 2023

한 이불 안 덮는 사이

'아 추워.'

아직 깜깜한 새벽인데 추워서 잠이 깼다. 역시 오늘도 이불이 없다. 이불은 옆에 누운 사람이 돌돌돌 말아서 혼자 다 고 자고 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돌돌 말린 이불 끄트머리를 잡고 있는 힘껏 잡아 뺀다. 최대한 빼앗아서 다시 덮고 자지만 이미 한 번 잠에서 깨버리고 힘을 쓴 후라 쉬이 잠들지 못한다.

날 밝으면 이불을 사러 가야겠다고 다짐하던 결혼 한달차의 기억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혼자 잠들었던 나는 늘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적절히 해내며 살고 있다. 모범시민 따로 없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사회에 순응했고, 결혼을 했으니 응당 임신을 했다. 신혼을 즐기는 일은 나에게 없었다. 누구나 그렇게 사니까,라는 말로 치부하기에는 누군가와 함께 가정을 꾸리는 일은 사소한 것부터 맞지 않아 힘이 들었다. 흔히 말하는 '한 이불 덮는 사이'를 남편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무조건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고 주장했고, 사랑으로 충만했던 그때는 이불 두 채 사기에는 돈도 많이 드니, 나도 오케이 했다. 하지만 한 이불을 덮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임산부인 아내의 이불을 다 빼앗아서 돌돌 말고 자는 잠버릇 고약한 인간과 더 이상 한 이불을 덮지 않기로 결심했다. 코는 또 얼마나 심하게 고는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온 가족이 한 방에서 잤는데, 그때 아빠의 코골이가 너무 듣기 싫어서 나는 코를 골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망했다.

아기가 막 태어났을 때 조그만 소리에도 움찔움찔 거리는 아기를 돌보느라 내 밤잠은 개나 줘버렸고, 그는 혼자서 침대를 독차지하고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아댔다. 신기하게도 아기가 아빠 코골이에 깨서 울었던 적은 없었다. 수유텀이 되면 아기가 쩝쩝 끙끙 에에 거리고, 나는 선잠을 자다가 부리나케 아기를 들쳐 안고 거실로 나와 수유를 했다.

하지만 아이의 울음소리에도 그는 여전히 잠만 잘 잤다. 이불 하나를 다 독차지하고 말이다.

아기가 어릴 때는 나는 땅바닥에서 아기와 같이 잤다. 침대에서 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자서 침대를 독차지하고 자는 그가 밉살스러워 보였다.

아이를 낳고 시어머니께서 어릴 때는 잠을 못 자니 따로 자는 게 어떠냐고 하셨다.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사람은 잠을 제대로 자야 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그는 절대 각방을 쓸 수는 없다고 못 박았고, 어머님의 우려와는 반대로 신생아 키우는 아빠라고 하기 어렵게 늘 꿀잠을 자고 출근했다.

"진짜 새벽에 아기 소리가 안 들려?" 정말 궁금해서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진짜 안 들려. 들려도 안 일어나는 게 아니야."

믿어주기로 했다. 안 들리는 척을 하든, 안 들리든, 새벽에 아기를 케어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의미라고 받아들였다. 첫째는 모유수유를 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둘째는 분유만 먹었지만 단 한 번도 새벽수유를 해 본 적이 없는 아빠였다.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 이 악물고 속으로 되뇌었다.


결혼하고 나서 깊게 자본 적이 별로 없다. 새벽에 꼭 한 두 번씩 깨고 만다.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 시초는 남편의 이불 탈취사건 때문이다. 한여름에도 두께감이 있는 이불을 목까지 덮고 자야 포근하게 잠이 드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 더더욱, 이불이 사라진 새벽에 잠에서 깨어났다.

임신 기간에는 늘 요의가 느껴져 새벽에 한두 번 깼고, 아이를 낳고는 강제로 일어나야 했으며, 지금은 그게 습관이 되었는지 새벽 2,3시에 한 번씩 눈이 떠진다.

그럼 옆에 곤히 잠든 아이들이 다 차내 버린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잠이 든다. 아마 내 옆에서 누군가가 계속 잠을 자는 이상 이런 습관은 쉬이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집은 원칙이 있다. 1인 1 이불이다. 무조건 내 이불을 사수한다. 잠자리 독서를 하려고 침대로 기어들어갈 때 아이들이 엄마옆에 붙는다고 내 이불을 침범하는 일이 있다.

"각자 자기 이불 덮어. 옆에 너 이불 있잖아."

그럼 아이들은 "힝"하면서 자기 이불을 덮는다. 할 수 없다. 옆 사람 서운하다고 한 이불 덮고 자던 시행착오는 신혼 때 이미 끝났다. 사랑하는 내 아이라도 이불을 양보할 수 없다.



그런데 복병이 나타났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들이 자꾸 내 베개 위에 머리를 얹는다.

"야! 네 베개 옆에 있잖아. 이건 내 거야."

잠결에 ' 베개 두 머리'를 발견하면 아들이라도 가차 없다. 내 베개를 탐내지 말라.

아들의 머리를 옆으로 치우고 다시 잠든다.

수면독립을 할 그날을 꿈꾸며 내 꿀잠은 누구한테 보상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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