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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May 02. 2023

내가 진상이 될 때

어제 둘째 아이와 산책로에 갔다. 등산로의 초입이라 아이들도 많았고,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곳에는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는데, 아이가 너무 좋아했다. 열 번도 넘게 왔다 갔다 거린 후에 발을 씻고, 집으로 가려는 찰나, 황톳길 앞 기둥에 매어져 있는 불독을 보았다. 

"불독이다."

아이는 강아지를 좋아한다. 내가 볼 때는 못생긴 불독이지만 아이 눈에는 예뻤나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길래, "주인이 없으니까 만져도 되냐고 물어볼 사람이 없잖아. 만지면 안 될 거 같아."

아이는 다섯 걸음쯤 떨어져서 불독만 쳐다보았다. "인사만 해주고 가자."

내 말대로 아이는 "안녕"하고 손을 흔들어주었는데, 순식간에 불독녀석이 와다다다하며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다행히 기둥에 매어져 있었지만 기둥에 바짝 매어 놓은 게 아니었기에 그 다섯 발자국 코앞까지 녀석이 덤벼들었다. 

험상궂게 생긴 녀석이 아이에게 덤벼드니 엄마로서 나는 화가 났다. 

"얌전한 애가 아니네. 저런 애를 혼자 두고 주인은 어디 간 거야."

분명 황톳길 어디쯤을 걷고 있었을 주인 들으라는 듯이 나는 큰 소리로 말을 해버렸다. 남편은 저기 주인이 있는 것 같다고 했고, 왠지 따가운 눈총이 느껴져서 개주인이 쳐다보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마디 더해주고 왔다.

"줄을 바짝 매야지, 여기 애기들도 많이 다니는구만, 입마개를 하던가."

아이는 해맑게도 개한테서 도망친 게 웃기는지 계속 재잘댔지만 나는 속이 좋지 않았다.

화가 난 것은 둘째치고 어쩌자고 속에 있는 말을 거르지도 않고 뱉어냈는지 속 좁은 게 들통이 나서 화가 나는 건지, 화가 나서 화가 나는 건지 모를 심정으로 집에 돌아왔다.



가끔은 나도 상식밖의 행동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나름 예의를 지킨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남들 눈에 이상했겠구나 싶은 일들. 예를 들면 아이가 어릴 때 외출을 하게 되면 이유식을 들고 나갔는데, 식당에서 전자레인지에 한 번 돌려달라는 부탁을 했던 일들. 그때는 그게 당연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안되면 말고,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에 "식당에서 이유식을 데워달라는 진상 손님"이란 제목의 기사를 클릭하고는 속이 시끄러웠다. 

그때 그 식당 주인은 속으로 욕을 얼마나 했을까. 그런 것들. 




아이가 어릴 때 갑자기 열이 나서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는데 휴일이고, 택시를 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를 손잡고 하나를 아기띠를 한 채로 아무리 택시를 잡으려 해도 빈 택시 3대가 연속으로 '안태워요' 하는 손사래를 치며 내 앞을 쌩 지나갈 때. 그래도 겨우 한 대 잡아 탔는데, 택시 기사님이 무척 화난 듯이 분노의 레이싱을 하시길래 아이가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이러다가 애 토하겠다 싶어서 "살살 좀 가주세요." 하는 순간 아기띠에서 아기가 진짜로 토를 했을 때, 기사님에게 화도 못 내고 "내려주세요." 했을 때. 

애들을 들쳐 매고 택시를 탄 사람이 상식밖인지, 애기 엄마 손님은 무조건 진상이라고 생각하는 기사님이 상식밖인지,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다 상식밖일 것이다.


서로에게 불친절한 경험을 많이 겪고 사람들은 서로에게 날을 세운다.

불독 주인은 나름 개를 잘 훈련시켰으니 살짝 매어놔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개를 자극한 건 아이이기 때문에 우리 애한테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개를 데리고 산책 나가면 어린이들 열명 중 아홉 명은 "만져봐도 돼요?"라고 물어본 후에 다가온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예의가 바른 지, 안 그런 한 두 명만을 통계로 모두에게 날 선 공격을 퍼붓는 건 비상식 아닐까.


우리의 일상에서의 상식은 나의 범주를 넘어설 때 비상식이 된다.

'개를 묶어두었으면 되었지, 더 짧게 맬 필요가 있나' 하면서 '주인 없는 개한테 말 시킨 사람이 잘못이지.' 같은 상황들 말이다. 우리가 떠난 후 발에 묻은 황토를 씻어내며 개 주인도 똑같이 나를 욕했겠지.

어쩐지 귀가 간지럽더라니.

집에 와서 아이 발톱 사이에 낀 황토찌꺼기를 닦으니 잘 안떨어진다. 불독과 개주인에게 미안한 마음도 찌꺼기처럼 들러붙어 떨어지지가 않는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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