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책장 May 03. 2023

어버이날인데 안 올래?

곧 어버이날이다. 원래대로라면 2시간 반 거리의 시댁으로 달려갔다가 거기서 1시간 거리의 친정집에 들려야 한다. 하지만 올해 우리는 가지 않기로 했다.

큰 아이의 발레 콩쿠르가 토요일로 잡혔기 때문이다. 토요일 저녁에야 공연이 끝날 텐데, 화장하고 발레 의상 입은 아이를 태우고 3시간 거리를 달려가고 다음날 올라오는 일정을 소화할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도 시어머님께서는 지난주에 우리 동네에 오셔서 저녁을 같이 드시고 가셨다. 다른 일로 오셨지만 마침 잘됐다 싶어서 어머님께 카네이션과 아이의 편지를 같이 드렸다.

어버이날 돈봉투만 드리기 멋쩍은데 문맹을 탈출한 아이들이 대신 편지를 써주기 시작하면서 편지와 함께 하는 현금봉투는 언제나 더 푸짐해 보인다. 자식을 잘 이용하는 예 아닐 수 없다.


시어머니는 쿨하셔서 별로 개의치 않아 하신다. 어버이날이라고 꼭 와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씀이라도 그렇게 해주시니 말이다.

문제는 우리 엄마다. 은근히 무슨 날이면 꼭 당연히 와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몇 년 전에 새언니가 몸이 안 좋아서 오빠가 아이들만 데리고 왔는데, 애들(그때 이미 초등학생이라 손도 안 가는 애들이었다.) 케어 혼자 하고 설거지도 하는 오빠를 보며 안쓰러웠다나 뭐라나, 그런 말을 나에게 했었다. 새언니에게 안 한 게 다행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엄마를 두었다는 게 참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애들 케어를 아빠가 하는 게 당연하다는 걸 '시어머니'의 입장이 되면 까먹나 보다.


역시나 이번 어버이날에도 못 간다는 말을 전하는 통화에서 "이번주에 안 오냐?"가 첫마디였다.

"오빠네는 온다던데, 같이 오는 거 아니었어?"

"아니, 이번주 토요일에 일호 발레 콩쿠르가 있어서 못 갈 거 같아. 정확한 시간은 안 나왔는데 거의 하루종일 가서 대기하는 거라 애 힘들어서 못 갈 거 같아."

"그래? 못 오면 할 수 없지 뭐. 그래도 시어머니한테는 못 간다고 오해 안 하시게 말씀드려."

"이미 어머님은 이번주에 오셔서 저녁 드시고 가셨어."

"그래?"

마지막 그래, 속에 이미 "나 서운하다."라는 느낌이 잔뜩 묻어있었다.




엄마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운해하는 게 부쩍 느껴진다. 나이가 들면 그렇다고 들었는데, 우리 엄마도 그렇다. 결국 나도 나이가 들 거고, 우리 아이들도 금방 자라나서 어느새 독립을 할 텐데, 나는 어떨까 생각해 보면,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은 내가 아이들로부터 빨리 독립을 해서 혼자 살고 싶은 마음이 크니까, 그때가 되면 너무 홀가분하게 즐길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나 보다.


"아이 콩쿠르 마무리 되면 6월이나 7월에 갈게요."

부모는 자식을 기다리고, 부모가 된 자식은 또 그 자식 뒷바라지를 하느라 바쁘다.

어쩌다가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드는 발레를 하고 싶어 하는 건지, 돈 먹는 하마라고 못마땅해하면서도 이렇게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부모에게 고마운 마음은 털끝만큼도 안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우리 딸을 바라보며, 나도 20년 후에 그 애에게 전화해서 "안 올 거냐?"라고 말하는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우리 딸은 나중에 갈게, 하며 나는 서운함에 속으로 원망하겠지.

에잇, 어버이날이 잘못했네.

밸런타인 데이에 내 초콜릿을 받은 애가 화이트 데이 때 아무것도 안주는 그런 느낌. 배신자.

무슨무슨 날은 다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탕 못 받은 애의 기분.


생각해 보니 엄마가 서운할 만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진상이 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