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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Apr 17. 2023

우리 남편은 왜 그럴까

텐트에서 자기 싫다

지난 주말 텐트 캠핑을 갔다.

나는 텐트에서 자는 것을 혐오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비가 왔다. 텐트는 축축해져 갔고, 결국에는 바닥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옆 텐트를 보았다. 우리 텐트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다. 저 정도는 되어야 비가 새지 않을 것 같은데, 또 저런 걸 산다고 하면 내가 그를 째려볼 것 같다.

산속이라 추웠다. 비가 왔으니 더 추웠다. 겨울 패딩을 가져가지 않은 건 내가 캠핑에 관심이 없어서 그냥 몸만 따라갔기 때문이었다. 주도적으로 준비했다면, 미리 날씨를 챙겼다면, 두꺼운 패딩을 당당하게 입고 갔을 텐데 말이다.

얇은 겨울 잠바하나를 입고 오들오들 떨면서 라면을 먹는다. 아이들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인 라면을 먹으며 세상 행복하다. 좋겠다. 행복해서.


같은 상황인데, 나만 우거지상인건, 그래 내가 문제겠지. 안다. 내가 문제다. 

챙겨간 뜨개질거리와 책은 무용지물이었다. 책을 몇 장 읽지 못했다. 책을 읽으려고 하면 일이 생기고, 누가 말을 시키고 애들이 싸우고, 한 놈이 운다. 

다시 뜨개질을 할라치면 아이들을 따라서 놀이터에 가야 했다. 

추워서 덜덜 떨며 시린 손을 비비며 설거지를 하다가 욕을 해버렸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에서 둘째는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우리 아이가 문제다. 아니, 문제아로 보는 내가 문제다.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아이마음을 다독여줘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어느 것을 먼저 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적 갈등이 생긴다. 아이 마음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소리 지르는 아이를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은 내 아이를 위함인지, 창피해서 숨고 싶은 나를 위함인지 모르겠다.


내가 캠핑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우리 남편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통보를 한다. 

"몇 월 며칠 어디 어디에 있는 무슨무슨 캠핑장에 예약했어." 

간다고 말을 했지만 나에게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님을 나도 안다. 나는 집에 있고 싶지만 텐트를 쳐야 하는 캠핑에서, 어른 혼자 아이들을 돌보며 텐트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것조차 나에게 선택지가 없다. 

왜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우리 남편은 왜 그럴까, 반문하다가 깨달았다. 그도 마음속으로 "우리 부인은 왜 그럴까."라는 말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우리 부인은 왜 그럴까. 이 즐거운 캠핑에 왜 우거지상을 하고 있는 걸까. 

우리의 정서가 이렇게 다른 것은 서로 달라서겠지만, 그 다름에는 이유가 없다. 그냥 다르다.


우리 아들은 왜 잘 놀다가 소리를 지를까. 왜 그럴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냥 마음이 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빠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해나가고 있다.


캠핑에서 돌아오는 길, 휴게소에 들렀다. 

남편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고생했어. 부인."이라며 오글거리는 멘트를 날린다.

응, 고생했지. 왜 고생을 사서 하는지 아직도 모르는 채 나는 그저 "응"하고 만다.

서로 다른 정서를 가진 부부란, 알다가도 모를 집합체다. 


욕지기를 퍼부우면서 나는 아마도 다음번 캠핑에 또 따라가서 욕을 하고 있을 것이다.

대체 나는 왜 그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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