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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May 01. 2023

대화할 때 즐거운 어른이 될 거야

며칠 전 MZ세대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의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갓 대학을 졸업했으니, 25살이나 26살쯤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나는 한국말을 하고 있는데 도통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나에게 무슨 서류를 제출해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디로 보내느냐는 질문에 "저에게 보내주세요."였다. 

사실 본인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 부분만 제출해 달라고 했으면 좋은데, 본인도 그 윗선에서 받은 메일을 전체 복사해서 나에게 안내하니, 이걸 전부 내가 작성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나라면 필요한 부분만 질문할 텐데, 하는 의미 없는 생각만 한 번 하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되물었다.

제가 선생님의 메일주소를 모르는데 당최 어디로 보내라는 건지, 마음속으로만 삼키고 "톡으로 보낼까요? 메일로 보내드릴까요? 일단 톡으로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정중하게 말한다고 했는데, 더 이상 답이 없었다. 그냥 톡으로 보내는 게 맞았나 보다.

한숨이 나왔다. MZ라서 그런가, 했지만 사실 MZ라서가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너도 안다.


첫 발령을 받고 6학년 담임을 맡았다. 그 아이들이 지금 스물일곱이다. 그중 한 아이는 교원대에 진학해서 초등교사가 되었다. 임용에 합격을 하고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내 덕분에 합격했다고. 무슨 소리야, 나는 너에게 임용시험에 나오는 문제나 팁을 하나 알려준 적이 없는데.

그리고 3월 첫 월급을 타고 나에게 케이크쿠폰을 보내주었다. 첫 월급을 탔는데, 선생님 생각이 나서 보내드립니다. 아이들과 맛있게 드세요,라고.

나도 어린아이들을 키우느라 학교로 출근했다가 집으로 출근하는 생활을 하고 있기에, 발령받은 제자에게 살뜰한 무엇하나 해준 게 없는데, 갓 스물네 살이 된 아이는 어쩜 그리도 예의 바르게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생각해 주는지.

요즘 젊은 사람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요즘 사람들 다운 건 뭔가, 싶었다. 나는 옛날사람다운가?

많이 옛날사람 같긴 하다. 간단한 서류 하나를 주고받는 일조차도 대화가 잘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애들 문해력이 너무 딸려,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


40대와 20대의 대화지만 소통에 문제가 없다




열네 살 때부터 나는 우리 엄마와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화가 진중하게 이어지질 않았다. 무슨 말을 하면 말꼬투리를 잡는다고 느꼈다. 

"엄마, 이건 이렇게 해야지 않아?"

"너나 잘해. 남 말 사돈하고 있네."

약간 이런 식이었다. 엄마는 나름 유머를 섞는다고 말을 이상하게 바꿔서 하곤 했는데, 그때는 그게 정말 싫었다. 그건 나에게 유머도 뭣도 아니었다. 짜증만 나고 입을 다물게 만드는 대화법이었다. 도대체 사춘기 딸과 대화하는 방법을 저렇게 모르고 있다니, 그랬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엄마와 대화를 원활하게 하지 못한다. 싸우거나 입을 다물어 버리지는 않지만 하고 나면 답답해진다고 해야 할까. 그런 걸 보면 좋지 않았던 대화가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는 것 같다.

아직은 우리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지만 가끔 나는 시답잖은 농담을 아이에게 종종 던지곤 하는데, 이게 아이가 느낄 때는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엄마와 대화가 안돼,라는 말이 언젠가 아이의 입에서 나올까 봐 조금 두려워졌다.


세대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나이의 문제도 아니고 말이다. 대화가 통하는 것과 통하지 않는 것은 사실 문해력과도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상처 주지 않으려는 마음,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나라면 저런 말은 듣고 싶지 않을 테니 상대에게도 이렇게 말해줘야지 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대화를 유지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아이에게는 시답지 않은 농담을 던지지 말아야지. 나를 까내려가며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유발하려던 엄마 옆에서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던 내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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