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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Apr 13. 2023

학교에 간 아이가 돌아왔다

변덕쟁이 일호는 갑자기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를 감는 게 좋다고 한다. 알람을 무려 6시 30분에 설정해 두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약속을 지켰다. 눈이 안 떠진다며 문을 열고 나와서는 눈은 감은채 화장실로 들어갔다.

어머, 이틀 연속 6시 30분 기상이라니.

아침에 머리를 감고 (만화)책을 읽으며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한다.

"오늘은 계란말이에 사과를 먹고 싶어."

계란말이를 노릇하게 만들고 사과를 깎아 대령한다.


그 사이 둘째도 시끄러웠는지 일어나서 나왔다. 침부터 책을 읽어주고 계란말이를 먹고 양치를 해도 7시 30분이다. 꾸물꾸물한 날씨 탓에 더 자고 싶어지는 몸상태를 뒤로 하며 일호는 오늘 일등으로 교실에 들어가 보고 싶다고 한다. 참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이호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우리 학교 가면 엄마 집에서 쉴 거야?"

"쉬다니, 엄마 집안일하고, 뜨개질하고, 책 읽느라 바쁘지."

하지만 그의 질문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어디 안 가고?"

"응. 집에서 집안일해야지."

굳이 집안일한다는 걸 계속 강조하는데, 이호는 "학교 문 안 열었으면 다시 오게." 란다.

"교실 문이 안 열렸으면 복도에서 조금 기다리면 친구들이 올 거야."

그러면서 너무나도 여유롭게 8시에 집을 출발했다.

역시나 길에는 중학생들만 바글바글하고, 초등학교 교문은 한산했다.

손을 흔들어 교문 안으로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중학생들 인파를 헤지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공동현관에 누군가 들어왔다는 알림이 울린다.

이 시간에 쿠팡맨이신가? 쿠팡올 게 없는데, 설.. 마..

설마는 역시가 되었다.

띠띠또띠따 삐리릭, 문을 열고 들어온 이호는 울음을 억지로 참고 있다가 나를 보고 눈물을 쏟는다.

"엄마 나 열이 나는 거 같고 멀미가 나서 다시 왔어."

딱 봐도 그게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교실 문이 닫혀있었어?"

"응. 근데 열나서 왔어."

열은 두 번씩 재봐도 36.8도. 너무나 정상이다.

"담임 선생님이 조금 늦게 오시나 보다. 4살짜리 아들 있다고 하셨잖아. 아침에 얼마나 바쁠 거야. 어린이집에 애기 데려다주고 오시려면 좀 늦게 오시나 봐. 앞으로는 어제처럼 천천히 가자. 우리 너무 일찍 갔나 보네."

삐질삐질 우는 아이를 달래주면서 깜깜한 복도에 1차로 놀라고, 교실문이 닫혀있어서 2차로 놀라고, 학교를 빠져나와 중학생들이 가는 방향을 거슬러 헤치며 집으로 왔을 아이를 생각하니 안쓰럽지만 웃음이 나온다.

속상하고 무서웠을 것이다. 제 누나가 일찍 간다고 1학년 짜리를 같이 일찍 보낸 나도 참, 너무하긴 했다.


다시 학교로 향하는 길, 이번에는 중학생들은 드물고 초등학생들로 거리는 꽉 차있다.

멀리서 친구가 부른다. "이호야, 같이 가자."

"이호야."

"이호야."

와, 우리 아들 인기 많네. 오늘따라 친구도 많이 만나고 아이의 얼굴은 다시 활짝 펴진다.

"나 오늘 1등으로 갔는데, 다시 집에 갔다 가는 거다."

아이고, 무슨 자랑이라고 그걸 또 말하고 있니, 큭큭.

이럴 때는 워킹맘이 아닌 게 너무 다행이다. 집에 엄마가 있어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아찔하다.




변덕이 죽 끓는 듯하는 일호를 보면 가끔 화가 난다. 왜 화가 나는지 생각해 보면, 일정한 루틴 없이 행동하는 아이가 못마땅하고, 심지어 나의 시간까지 침범하는 일이 생길라치면 내 속에 있는 괴물이 등장한다. 자식에게 나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속의 진심들이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루틴 안에 아이를 가두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아침밥을 먹으며 영어영상을 봤으면 좋겠는 건 나의 생각이고, 아이는 그만의 욕망이 마음속에 있을 터다.

어떤 엄마들은 자신이 정한 규칙으로 아이를 잘 끌어온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루틴을 만들어주고, 학교 가기 전에 할 일을 다하고 등교시키거나, 학교 갔다 와서 할 일먼저 하도록 만든다고 한다. 그런 걸 SNS에 잔뜩 올리면 나는 그걸 보며 또 자괴감에 빠진다.

얼마 전 한 인플루언스의 글을 보고 속이 상했다.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을 잘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엄마인 저를 믿고 따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해보자고 제시하면 잘 받아들이고 따라와요. 아이가 엄마말을 따르지 않는 것은 엄마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에요. 많이 소통하세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의 자녀는 순종적인 성향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엄마인 그녀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겠지. 그런 노력이 다 부질없다는 건 아니다. 다만 아이와 많이 이야기하고 노력을 기울여도 자기주장이 유독 강한 아이도 있다는 것이다. 내 아이가 그렇다. 그래서 육아가 쉽지 않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이와 신뢰조차 쌓지 못하는 엄마로 매도되고 나면 기분이 참 그렇다.

하지만 나는 내 아이의 미래를 확신한다. 고집이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욕망이 뚜렷한 만큼 뭐든지 해낼 거라고 믿는다.


일호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싶다.

하지만 이호는 정해진 경로에서 이탈하는 것이 두렵고 무섭다.


이렇게 오늘도 나의 육아는 앞이 보이지 않는 밀림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드는데, 중학생 형아들이 학교 가는 길의 반대 방향으로 헤치며 뚫고 지나온 길이 아이에게는 밀림 속을 헤매는 기분이지 않았을까.


등교하기에 적당한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듯이, 그 시간에 가지 않으면 집에 돌아와 버리고 싶어지는 것처럼, 무엇이든지 그 시간에 꼭 그것을 해야 하는 것일까. 집에 오자마자 숙제부터 하는 환상적인 자녀로 키우고 싶지만 집에 와서 조금 쉬고 싶은 그 마음도 너무 이해가 간다.


경로를 이탈해도 다시 경로를 재탐색하듯이 매일 헤매는 육아지만, 하나의 큰 잣대가 흔들리지 않는 이상, 나의 육아도 곧게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집에 돌아왔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학교로 출발한 아이를 보며, 나의 육아는 그렇게까지 신뢰가 무너진 관계는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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