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을 배불리 먹고 잘 먹었다며 기지개를 켜다가 내복이 위로 딸려 올라가자 자신의 배꼽을 내려다보니 그 안에 잔멸치 한 마리가 들어가 있는 걸 발견했단다.
"밥을 어떻게 먹었길래 배꼽에 멸치가 있어!"
너무나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별 희한한 일도 다 있다며 일축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아이는 자신의 배꼽 사진을 찍으라며 동생에게 엄마 핸드폰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그걸 왜 찍어!"
별나다, 별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종종 하는 올해 열 살이 된 딸이 또 흰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며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말자, 나의 마음을 다잡으려는 순간이었다.
"이거 찍어서 엄마 글에다가 써. 엄마 웃긴 거 있으며 글 쓰잖아."
"어머나, 엄마 글 쓰라고 배꼽에 낀 멸치를 찍으라는 거야?"
별안간 뒤통수를 얻어맞는 건지, 쓰다듬을 당한 건지 모를 띠용하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하는 일에 별로 관심도 없고, 늘 자기 위주로 생각하던 아이였는데, 그동안 엄마가 글 쓴다고 혼자 중얼거리며 안 찍던 사진을 열심히 찍어대던 모습을 알게 모르게 지켜봤나 보다.
"아. 이거 사진 찍어놓을걸. 아깝다. 글로 쓰면 재미있었을 텐데."리는 말을 종종 했기에 특별한 관심이 아니었더라도 알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배꼽 사진을 찍었지만, 어후 이 사진은 남에게 보여주기 민망하고 남사스러워서 도저히 올릴 수는 없겠다. 배꼽에 멸치가 낀 사건이 글감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위해 자신의 배꼽을 기꺼이 내어준 것이 나에게는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나는 아이를 위해서 내 배꼽을 내어줄 수 있을까. 내 배꼽 사진은 도저히 어느 곳에도 내어줄 수 없을 것 같은데, 아이는 나에게 배꼽을 내어주었다. 이기적이고 자기만 아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남동생보다 엄마인 나와 더 감정교류가 안되고 엄마를 위로하는 건 주로 둘째 아들이었으니 말이다. 딸은 딸 나름대로 장점이 있지만 딸과 나누는, 우리가 기대하는 일반적인 감정을 아들과 더 교류하고 있었으니, 딸에게는 기대가 크지 않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다. 엄마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배꼽이라는 것은 엄마와 연결되어 있던 탯줄의 흔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탯줄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가위로 싹둑 잘린다. 탯줄을 자르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많은 육아서를 읽고 내린 결론으로는 심리적으로 연결된 탯줄을 자르지 않으면 아이가 병든다는 점이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는 한 명도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그런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져 의견이 다르더라도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데, 아이에게만은 그것이 예외로 작용해서 나를 괴롭힌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다.
"엄마 심리 수업"을 쓴 윤우상 박사님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엄마의 색안경이라고 말한다. "못마땅 색안경"을 쓴 엄마의 아이는 모두에게 "못마땅 냄새"를 풍기게 되어 다른 사람들도 아이를 못마땅해한다. 엄마가 "귀여움 색안경"을 쓰고 아이를 바라보면 "귀여운 냄새"를 풍기는 아이가 되어 다른 사람들도 아이를 귀여워한다고 한다. 30년 경력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전언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나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보다 보면 종종 느낀다. 부모의 태도가 아이를 키운다.
초등학교에서는 1학년, 4학년 때 정서행동특성검사라는 것을 한다. 1학년은 부모가 아이를 판단하여 검사하는 방식이라, 밖에서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라도 부모가 문제로 보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모의 관점이 아이를 관심군으로 만들 수 있느냐 아니냐 판단된다.
몇 년 전 1학년을 맡았을 때 우리 반에 얌전하고 수업도 열심히,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런데 정서행동특성검사를 하고 나니 아이가 관심군으로 판명되었다.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님 연진이 (아이 이름이 연진이었다! 그 연진이랑 정말 달랐다!) 정서행동특성검사가 관심군으로 나왔어요. 제가 볼 때는 어머님께서 너무 점수를 짜게 주신게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연진이가 학교에서는 관심군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전반적으로 다 잘 지내고 있는데, 혹시 가정에서 문제가 있을까요?"
"아, 동생을 너무 때리고, 저는 연진이가 좀 힘들거든요. 기관에서 잘 지내는 건 알고 있었어요. 어린이집 때도 늘 칭찬만 해주셨는데, 집에서는 많이 달라요. 애가 두 얼굴이에요."
아이가 양면성이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어머님께 아이들은 집에서와 학교에서 다른 경우가, 같은 경우보다 더 많고, 편안한 엄마에게 더 풀어진 모습을 보이는 게 당연한 거라고 말씀을 드렸다.
결국 연진이 어머님은 재검사를 하시고 아이는 관심군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님과의 통화는 그 후에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연진이가 원래도 말수가 없고, 얌전한 아이였지만 3학년이 되어 복도에서 만난 연진이는 1학년때보다 더 어두워 보였고,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인사를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재빠르게 피해 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성적이기에 인사하기가 쑥스러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머님께서 아직도 연진이를 못마땅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편적인 모습으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최근에 "엄마 심리 수업"을 읽으면서 연진이 생각이 많이 났다.(드라마에서 나온 연진이 때문에 더 생각이 났기도 했지만 말이다.)
나의 아이와 나도 서로 다른 인간일 뿐이다. 그를 완벽히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냥 너는 그렇구나,라고 말해주면 될 것이다.
열 살이나 되었지만 나는 아직 그녀를 잘 모르겠다. 아이들은 크면서 열 번도 넘게 변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조차도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도 변하고 있어서 나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다. 사람은 열 번이 아니라 백번도 넘게 변하는 존재인 것 같다.
엄마가 글 쓰는 것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이는 딸아이가 자신의 배꼽을 희생하면서까지 엄마 글 써봐,라고 말하는 순간, 아이는 빛나고 삶도 빛난다. 아이에게서 위로받는 순간이며, 나도 잘 모르던 아이의 새로운 모습을 사랑할 수 있는 순간이다.
못마땅 색안경을 벗어던져라. 모든 아이는 사랑스러운 존재다.
차마 멸치배꼽 사진은 못 올리고, 만 7세부터 배꼽티를 입고 아이돌 댄스를 추는 아이의 사진을 한 장 올려본다. 아이가 배꼽티를 입을 때 나의 "못마땅 색안경"이 발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