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초는 먹어도 됩니다.
꿀꺽꿀꺽 켁켁 컥컥컥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3살짜리 딸아이는 언제나 그렇듯이 내 발 밑에서 온갖 것을 열어보고 만져보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소리에 아이를 바라보니 식초를 꺼내서 꿀꺽꿀꺽 마시고는 온갖 인상을 쓰며 나를 바라본다.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그리고 119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아이가 식초를 마셨는데요. 25개월이에요. 두 모금이나 마신 거 같아요. 어떡하죠?"
나는 울음을 참으며 상담원의 말을 기다렸다.
"...... 어머님 아이가 식초를 마셨다는 말씀인가요?"
"네. 자기가 두 모금이나 마셨어요."
나는 이미 울고 있었고, 아이는 여전히 인상을 쓰고 있었다.
"...... 어머님 원래 식초는 먹어도 되는 건데요. 혹시 아이가 식초를 먹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을까요?"
"...... 네? 아..... 식초는 산이잖아요. 3살인데 이런 산성을 먹어도 되는 건가요?"
"네, 식초는 음식에 넣는 식초 말씀이시죠? 정 걱정이 되시면 물을 조금 먹여보시고 이상이 있으면 병원으로 가보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찾아오는 부끄러움의 시간.
아, 식초는 먹어도 되는 거였지.
아이를 키우면서 만 3년 정도는 119에 자주 전화를 걸었다. 감사하게도 119에서는 긴급 출동뿐만 아니라 의료 상담도 해준다. 초보 엄마는 모든 상황이 다 처음이라 자주 걱정이 되고 괜찮다는 말을 들어야 안심이 된다. 그래서 그렇게도 전화선이 닳도록 119에 전화를 했을 거다.
이제 더 이상 119에는 전화하지 않는다. 심지어 아이가 콧물이 조금 흘러도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지도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마음이 단단해졌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또 다른 육아 상황에는 항상 초짜이다. 7살 엄마는 처음이라, 8살 엄마는 처음이고, 9살 엄마도 처음이니까. 앞으로도 계속 그러하겠지.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 처음이겠지.
나도 내 인생의 마흔 살이 처음인데, 9살 엄마까지 처음 해야 하니 모든 게 처음인 엄마는 늘 마음이 조급하고 괜찮은 건지 의구심만 든다.
지나고 보면 그래도 됐던 것을,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던 것을 그리도 안달복달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다그쳤는지, 속을 까맣게 태웠는지.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현재에 서있는 나는 매일이 조급하고 의문 투성이다.
"아이고 좋은 때네."
우리 아이들보다 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만나면 항상 듣는 말이다. 좋을 때라고. 그 말이 그렇게도 싫다. 좋긴요. 말도 더럽게 안 듣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해야 할 일도 맨날 미루는데요. 그래서 저런 말이 참 듣기 싫다. 그 엄마들도 그때는 아마 그랬을 거다. 인간은 항상 지나고 보면 과거를 미화해서 보니까. 대부분 현재가 힘드니까. 나도 그렇다.
식초는 먹어도 된다. 아이에게 무해하다. 먹는 순간 조금 목이 따끔할 수는 있지만 원래 먹으라고 만든 거다. 지금의 나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 아이는 잘 자라고 있고 잘 자랄 거라고. 아이의 단점에만 너무 눈을 치켜뜨고 보지 말자. 아이는 아이의 타고난 성향대로 잘 자랄 거다. 엄마가 울면서 119에 전화하는 행동이 오히려 아이에게 더 나쁜 기억이 될 수 있었겠다. 아이에게 무해한 것이라면 그냥 지켜보는 엄마가 되자. 늘 초짜인 엄마들아, 너무 안달복달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