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책장 Jun 13. 2023

주차는 어렵다


운전면허를 딴지 10년이 되었다. 작년에 면허를 갱신했으니 벌써 10년이 살짝 넘었다. 새로 갱신한 운전면허증은 괜히 영문으로 신청을 다. 외국에서 운전할 일이 살아생전 있을까 싶지만 인생은 모르는 거니까.

나이가 들어 퇴직을 하고 나서 북유럽의 어느 조그마한 도시에서 글 쓰고 뜨개질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일 년 정도 생각하지만 더 오래여도 괜찮고, 더 짧아도 상관은 없다. 그때 상황에 맞춰 살면 되니까.

소설가 요 네스뵈의 노르웨이도 좋고, 가수 크리스토퍼의 덴마크도 좋고, 스웨덴은 그냥 좋다.

북유럽은 추워서 매일매일 뜨개질을 하기에 안성맞춤일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 코펜하겐 시내로 운전을 하고 나가서 뜨개실을 사 오는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하니 설렌다. 내 삶을 조금 더 주체적으로 사는데 운전은 약간의 도움을 주는 기술임에 분명하다.


운전을 한다는 건 멋진 일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무서워서 배가 아프고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고였지만 그래도 내가 운전을 해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은 자율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 시간이 즐겁기도 하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다가 복직하던 해에 중고로 차를 한 대 구입했다. 당시 등하원도우미 이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었기에 여유롭고 감사하게도 7시 40분에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 7시 40분부터 8시 10분까지 출근하는 그 시간 동안은 나의 힐링타임이었다.

"아침에 커피 마시면서 팟캐스트 틀어놓고 운전하는 길이 너무 좋아."

라는 말을 남편에게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주 어느 날 아침, 전날 퇴근하던 남편이 사다 놓은 빵과 커피를 운전석에서 발견했던 행복이 5년쯤 지난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무슨 텔레파시였는지 왠지 운전석 옆 박스를 열어봤는데, 혹시 하면서 여는 그 2초 동안 이 안에 초콜릿이 들어있겠지,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속에 그득히 들어있는 초콜릿을 보고 혼자서 소리를 질렀던 기억도 있다.

물론 이런 모든 일들은 일회성이었다. 남편은 그 이후에 이런 이벤트를 해 준 적이 없었고, 나는 그 한 번의 기억으로 또 야금야금 추억을 팔아가며 산다.


어느 날 주차를 하려는데 후방카메라가 까맣게 되어서 작동하지 않았다. 겨드랑이에서 땀이 솟구쳤다. 그동안 후방카메라에 의지하며 주차를 했던 나의 운전 습관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카메라가 고장 난 채로 운전하던 그 며칠 동안 사이드미러를 통해 주차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이드미러를 보며 주차를 하니, 세상에 이렇게 편하고 안정감 있게 주차를 할 수 있다는 걸 그때서야 새로이 알게 되었다.

그 후로 후방카메라를 새로 달았지만 나는 사이드미러와 후방카메라를 같이 이용하며 주차를 하게 되었고, 주차능력이 조금 향상되었다.



특히 요즘은 신기한 현상 한 가지를 발견했다. 원래는 주차자리가 넉넉한 곳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옆으로 자리가 모두 빈 공간이 생기면 쾌재를 부르며 그쪽으로 달려가곤 했는데 텅 빈 공간에 주차하려면 주차선 안으로 쏙 들어가기가 꽤 어려워 여러 번 앞뒤로 왔다 갔다 해야 겨우 주차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겨우 한 자리 있는 곳에 주차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의외로 한 번에 쏙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

어휴, 자리가 왜 여기 하나밖에 없는 거야, 라며 옆 차를 긁지 않도록 바짝 긴장을 하며 후면 주차를 시도할 때면 나름의 기준이 생기는 것이었다. 옆 차라는 기준.

사이드미러에 비친 옆 차의 끝 부분을 적당히 위치시키고 후진을 하면 그 안으로 쏙 들어갈 수 있다. 생각해 보니 운전면허 학원에서 강사님이 비슷한 방법으로 공식을 알려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 혼자 텅 빈 공간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 비스듬히 비뚫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옆 차 라인에 맞춰 대다 보면 나름 완벽한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결국 나에게 기준과 틀을 제공해 주는 일들이 때로는 답답하고 긴장되기도 하지만, 나를 바르게 세우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운전을 하며 가끔 깨닫게 된다. 흐름에 맞춰 가는 일,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은 도로에서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매 순간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늘, 문제는 생긴다.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결국 나를 바른 곳으로 이끌어 준다. 계속 한 자리에 머물게 하지 않는 인생의 법칙 같다.

들어가야 할 골목을 지나쳐도 경로를 재탐색해서 다시 나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것도, 옆 차 때문에 신경이 쓰이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주차를 잘할 수 있는 것도, 인생이란 운전처럼 자율적이면서도 예상 밖의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를 성장시키는 일, 운전도 육아도 공부도 일도 힘들지만 재미있는 이유다.






사진 출처 픽사 베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며느리라는 종속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