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연작소설

준호의 마음

#4

by 새벽책장

"준호야 일어나, 학교 가야지."

엄마가 깨우는 소리. 아침이 시작된다. 준호는 지긋지긋하다는 감정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더 자고 싶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엄마가 또 화를 낼 거니까, 서늘한 눈빛으로 노려보는 엄마는 너무 무섭고 슬퍼서 준호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식탁을 보니 준호가 즐겨 먹는 모닝빵 대신 시리얼 상자와 우유가 올라와 있다.

"빵은?"

"그냥 시리얼 먹고 가. 모닝빵 다 떨어진 걸 모르고 있었어. 사다 놓을게."

엄마는 준호를 쳐다보지도 않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식탁을 지나쳐서 화장실로 먼저 들어간다. 머리가 하늘로 솟구쳐 있다. 손에 물을 묻혀 머리를 정돈한다.

며칠 후면 방학인데 준호는 방학이 싫다. 차라리 학교에 가는 게 낫다. 엄마가 짜놓은 스케줄에 따라 방학생활을 하는 것이 교실에 앉아 있는 것보다 더 숨 막힌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나는데 이런 걸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아직 어린 준호는 알지 못한다. 괜히 세수를 거칠게 해 본다. 물을 사방에 튀겨놓는 걸로 화를 좀 가라앉혀본다. 이런 게 사춘기라면 겪고 싶지 않은데, 친구들은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은 거 같던데 왜 나만 이렇게 빨리 사춘기가 왔는지 준호는 그것조차 화가 난다.


어제는 학교에서 성민이를 때렸다. 지난번에 예원이 생일파티에도 학원 때문에 가지 못했던 게 생각나서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금요일은 수영이 있는 날인데 절대로 빠지면 안 된다. 일주일에 한 번 레슨 있는 학원은 엄마가 절대로 못 빠지게 한다. 보강 잡는 것도 어렵다고. 준호는 수영을 왜 배우는지도 모른다. 그냥 물에서 노는 거면 자신 있는데 팔을 왜 꼭 그렇게 휘둘러야 하는 건지도. 물에 들어갈 일이 있을 때는 구명조끼를 입고 가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될 텐데 그딴 생존수영인지 뭔지도 짜증 난다.

2학년때부터 수영학원에 다녔지만 사실 준호는 수영을 못한다. 선생님이 매번 엄마한테 "준호가 많이 늘었다."라고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을 알지만 수영이 전혀 늘지 않았다. 물에 겨우 뜨는 정도다. 앞으로 나가는 것도 어려운데 진도는 계속 나가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지난달에 학교에서 하는 생존수영시간에도 성민이는 수영을 제법 잘했다. 준호는 학원을 2년째 다니는데, 성민이는 수영을 배워본 적도 없다는 녀석이 앞으로 쭉쭉 나갔다. 방학 때마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가는데 강에서 매일 수영을 한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개헤엄'이라는 걸 가르쳐줬다며 성민이 자식은 또 자랑을 했다. 수영선생님은 성민이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자세를 가르쳐주셨지만 "녀석, 폼은 웃기지만 물에 빠져도 죽지는 않겠다."라며 볼을 살짝 잡아당기며 웃어줬다. 준호는 그 모습을 보고 또 질투가 느껴졌다. 성민이랑 친했는데, 이제는 성민이가 싫다. 뭐든 칭찬받고 뭐든 잘하는 성민이가 재수 없다.


어제 역시나 집에 와서 엄마에게 혼이 났다. 성민이 생일파티에 가도 되냐는 말은 물어보지도 못했다. 엄마는 화가 나서 씩씩대다가 저녁에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에 들어와서 숙제를 해야 하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데 엄마는 담임선생님에게 또 화를 낸다. 심지어 아빠가 화가 났다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말이다. 아빠랑 엄마는 서로 대화를 하지도 않고, 지금도 아빠는 퇴근조차 하지 않았는데 언제 엄마가 아빠한테 말을 했을까. 아빠가 화났다는 말을 하면 선생님들이 엄마를 무서워하나?


작년에 지은숙 선생님은 참 좋았다. 머리도 쓰다듬어주시고 준호가 뭘 잘못해도 빤히 바라만 보셨다. 그 눈빛이 엄마의 레이저 나오는 눈빛과는 사뭇 다른 어떤 것이었다. 처음에는 "준호도 많이 힘들겠다."라고 하며 쳐다보시는 선생님이 이상했다.

준호도 2학년때까지는 칭찬도 많이 받고 공부도 잘했다. 구구단도 1학년때 다 외웠고 받아쓰기도 항상 백점이었으니까. 그런데 학교 끝나고 친구들하고 놀이터에서 놀지도 못하는 게 싫어서 엄마에게 학원에 다니기 싫다고 했다가 혼이 난 이후로는 학원이 더 싫어졌다.

엄마는 놀이터에서 노는 애들은 다 공부도 못하고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4학년인 지금 정말 그런가 의문이다. 학원이라고는 축구 학원밖에 안 다니는 성민이는 오히려 준호보다 단원평가 점수가 항상 좋다. 거의 백점을 받는다. 지난번 단원평가에서 85점을 받아서 엄마한테 엄청 혼난 날도 성민이는 95점을 받았다. 사실 준호는 95점을 받아도 엄마한테 혼이 나는데, 성민이는 한 번도 시험 못 봤다고 혼난 적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하나밖에 안 틀렸는데 왜 혼이나냐며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 자식이 부럽지만 재수 없다. 그래서 성민이 생일파티에 가고 싶지만 가기 싫다. 어차피 갈 수도 없지만 말이다.


올해 박서은 선생님을 처음 봤을 때 너무 예쁘고 착해 보여서 좋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준호를 바라보는 눈빛이 엄마랑 비슷하다. 그래도 화를 내지는 않지만 성민이를 보는 눈빛과 준호를 보는 눈빛이 다르다는 것쯤은 준호도 안다.

성민이 생일파티에 예원이도 간다는데 준호는 진짜 짜증이 난다. 어제 성민이가 바닥에 앉아서 울고 있을 때 예원이가 준호를 째려보고 성민이를 위로해 줄 때, 준호는 지구가 무너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도 성민이도 예원이도 다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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