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무관님 교실 열쇠 꾸러미 못 보셨어요?"
"어? 열쇠함에 없어요?"
"네, 본관 교실 열쇠 꾸러미만 없는데요. 컴퓨터실 열어야 하는데."
"아... 제가 한번 찾아볼게요."
"1교시에 컴퓨터실 가야 해서요.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6학년 1반 김호연 선생님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행정실 문을 열고 달리듯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1교시 시작하려면 5분 남았는데 열쇠꾸러미를 언제 찾지, 송희는 호연보다 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메신저에 내용을 입력한다.
"본관 열쇠 꾸러미를 가져가신 선생님께서는 지금 바로 반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1교시 시작 전에 반드시 반납해 주시기를 꼭꼭 말씀드립니다."
메시지 내용이 괜찮은가? 맞춤법에 어긋난 단어는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송희는 "전체발신"을 클릭한 후 전송 버튼을 누른다.
읽음, 읽음, 읽음 표시가 컴퓨터 오른쪽 하단에서 계속 깜빡인다.
가져가기 전에 꼭 이름 쓰고 가져가라고 굳이 장부를 만들어놓아도 이렇게 서명 없이 가져가 버리는 사람들이 꼭 있다. 교사라면 원칙을 더 잘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학교라는 직장에 들어온 지 5개월째인 송희는 교사도 그냥 하나의 집단이라는 걸 오늘도 깨닫는다. 사람들이 참 말을 안 듣는다.
11시 30분 실장님이 급식을 드시러 가는 시간이다. 송희는 요즘 급식실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 간단히 도시락을 싸와서 먹곤 하는데, 주로 냄새가 나지 않는 것들을 준비하다 보니 한계가 있다. 오늘처럼 더운 날에는 시원한 냉면이 먹고 싶어서 외출을 달고 나가 사 먹고 싶지만 너무 번거로워서 그만두기로 했다.
점심시간에는 좀 쉬고 싶고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싶지만 실상은 집에서 텀블러에 넣어온 얼음을 아껴가며 하루종일 카누나 타 마시는 신세다.
"신주무관님 저희 밥 먹고 올게요. 오늘도 도시락?"
실장님과 김주무관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묻는다. 송희는 괜히 바쁜 척을 하면서 컴퓨터 자판에서 두글자정도 더 치다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든다.
"네. 맛있게 드시고 오세요."
쌩긋 웃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고 싶은 콤플렉스다. 알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게 직장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이렇게나 스트레스를 줄지 예전에는 몰랐다.
'성격 좋다' 그나마 송희가 내밀 수 있는 카드는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서다.
그래도 아무도 없는 행정실의 고요함을 즐긴다. 오전 내내 여기저기에서 전화받고 교장실에 가시는 실장님에게 예산 설명드리느라 진이 빠졌다. 학교에 와서 느낀 거지만 실장님은 잘 모르는 게 많은 것 같다. 담당하는 일이 다르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몰라도 너무 모른다. 5개월 일한 자신에게 바뀐 매뉴얼을 물어본다. 송희도 매뉴얼을 다시 찾아봐야 알 수 있다. 매뉴얼 파일을 전송해 버리고 싶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친절히 알려드린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예의를 지킨다고 하지만 돌아서면 MZ세대는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말들이 많다. 송희가 생각하기에는 기성세대들이 더 이상하다. 관행이라는 말로 합리적이지도 않은 일들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들도 그렇고 결재 시스템에서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결재를 해버린 다음에 나중에 지출 품위가 끝나고 나서야 왜 이렇게 했느냐며 타박을 한다.
"교장 선생님이 결재하셨잖아요."라는 말을 너무 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런 용기가 없다. 한 5년 차쯤 되면 당당하게 그 말을 하리라, 송희는 다짐한다.
하교시간인지 행정실 밖 복도가 소란스럽다. 아이들은 역시나 시끄러운 존재들이다. 학교라는 곳으로 다시 돌아올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 교육행정직을 선택하게 되었고, 나름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했다. 물론 3번 만에 합격했지만 주변에서도 이 정도면 선방한 거다. 아직도 노량진에 있는 친구들도 있고,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중소기업에 입사한 친구들도 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중소기업에 입사한 친구들의 인스타를 보면 송희는 기운이 빠진다. 첫 월급을 받았다며 명품가방을 사고, 점심시간마다 맛있는 걸 사 먹고, 스타벅스 커피는 일상이다.
학교 주변에 스타벅스도 없을뿐더러 점심시간조차도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 송희는 갑갑하다. 예전에는 행정실 직원들은 점심시간에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 교사들보다 1시간 늦게 퇴근해야 해서 요즘에는 점심시간에도 일하고 똑같은 퇴근시간을 보장받는다. 다른 학교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교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지만 적어도 송희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몇 년 전에 한 선생님이 행정실 직원들이 1시간 덜 일하면 당연히 퇴근시간이 길어져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하셔서 점심시간에도 누군가는 행정실에 남아서 일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 선생님이 누구신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지만 지금도 근무 중이라고 하시는데 대충 누군지 알 것도 같다.
남의 일에 오지랖도 넓다고 실장님은 그 선생님을 싫어하지만, 송희는 그렇게 할 말을 하는 사람이 왠지 멋있고 부럽다. 그리고 8시간 근무를 해야 하는 게 맞기도 하고 말이다.
복도가 잠잠해지고 나서 행정실 문이 열리며 호연이 들어왔다.
"주무관님, 아침에 열쇠 빨리 찾아주셔서 감사했어요. 덕분에 1교시 잘했네요. 근데 우리 학교도 번호키로 다 바꾸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실장님! 교장선생님한테 번호키 이야기 해보셨어요?"
송희와 동갑인 호연은 서글서글하게 말도 잘한다. 숫기가 없는 송희는 그런 호연이 신기하고 조금 부럽다. 그래서 6학년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애들과 잘 지내는 것조차 신기하다.
"김호연 선생님이 직접 말씀드려 보세요."
쌀쌀맞은 듯 웃기만 하는 실장님에게 입을 한번 삐죽이고는 호연은 송희에게 다가왔다.
"주무관님 요즘 급식 안 드신다면서요. 이거 드세요."
호연은 연노랑색 미니 자유시간 초코바 하나를 송희에게 건넨다.
송희는 두 손으로 그걸 받으며 미소를 짓는다.
"김호연 선생님, 이번에 유럽여행 간다면서요? 부럽다."
옆자리의 김주무관님이 한쪽 입꼬리만 더 올리며 특유의 아줌마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네. 처음으로 가는 거예요. 남들은 대학생 때 배낭여행으로 많이 가던데, 대학생들 사이에서 늙은이 취급받는 거 아닌가 몰라요."
"그래 우리 딸 친구들도 해외 많이 가더라. 요즘에는 진짜 풍족해. 나도 유럽은 한 번도 못 가봤는데."
김주무관님은 진짜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그래도 선생님들은 좋겠어요. 방학에 해외여행도 가고."
"주무관님도 가실 수 있어요. 휴가 쓰시고 가시면 되잖아요. 다른 직장사람들도 주말 껴서 그렇게 많이 다니더라고요. 교사들만 해외여행 잘 가는 거 아니던데요 뭘. 저도 이번에 같이 가는 친구 중에 하나는 그냥 회사 다니는 애예요. 아 물론 걔는 중간에 혼자 들어와야 하지만 하하하."
어떤 직장인이 2주 동안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까. 송희는 인스타에서 본 친구들의 해외 여행 사진도 일본이나 태국 정도였던 걸 떠올렸다. 이런 게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걸까. 송희의 여름휴가는 3일이다. 주말 껴서 5일을 만들긴 했지만 쥐꼬리만 한 월급과 시간으로는 유럽여행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인스타에서 명품백을 자랑하는 친구들보다도 지금 눈앞에 서있는 호연의 여름방학이 더 짜증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