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연작소설

밤의 학교는 안녕하다

#7

by 새벽책장

'오늘도 6학년 5반이 제일 늦게 퇴근하는구먼.'

성훈은 6학년 5반에 불빛이 꺼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운동장을 한 번 돌면서 쓰레기를 집게로 주워 올린다. 얼마 전 아내가 사다 준 헤드랜턴이 꽤 쓸모 있어서 만족스럽다.

학교에서 야간 당직전담사로 일하게 된 지 6개월이 조금 지났다. 처음에는 겨울이라 춥고 어둠에 싸인 밤이 무섭기도 했는데,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가 요즘은 무섭다기보다는 고요한 적막을 즐기고 있다.

여름이라 해가 길어져서 밤이 짧은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단지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다 보니 퇴직 후 아내와 함께 해오던 장보기라던가 저녁 먹고 산책하기 같은 걸 할 수 없어서 조금 아쉽기는 했다.

성훈은 재작년까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작년 2월에 정년퇴직을 하면서 갑자기 하루종일 놀고먹는 시간이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그동안 못하던 운동도 하고 집안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내와 짧게나마 태국과 일본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성훈의 아내 지영은 이제 환갑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아직 일을 한다. 정부지원 아이돌보미로 일하고 있는데 젊었을 때 사립유치원에서 교사로 근무했던 경력을 인정받아 쉽게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막내딸이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십 년이 다 되어간다. 그 일은 성훈이 보기에도 어렵고 힘들어 보였지만 워낙 아기들을 좋아하는 아내의 성격상 일을 하고 더 생기가 돌아 성훈도 일하는 부인이 좋았다.

아내의 퇴근시간은 저녁 6시다. 원래는 더 일찍 퇴근해도 되는데 신생아를 낳은 부모들은 자주 멘붕에 빠지기 때문에 아내가 퇴근할 때쯤 아기가 똥을 싼다거나 갑자기 자지러지게 운다거나 할 때 아내의 퇴근은 조금 미뤄지곤 한다.

지영이 집에 오는 시간이 6시에서 7시가 되다 보니 퇴직한 성훈은 낮에 집안일을 해놓고 저녁까지 차려놓았다. 아내는 이런 성훈의 모습을 좋아했는데, 처음에는 퇴직하고 누리는 여유가 좋아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것만 같더니 점점 짜증이 늘기 시작하고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성훈은 운동을 더 했지만 마음의 헛헛함이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평소에 알고 지내던 교육청 후배가 학교 야간당직 전담사로 일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재취업을 하게 되었다.

성훈이 정년퇴직을 할 때 후배 교사들은 부러워하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도 정년까지 할 수 있을까요?"

성훈도 그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운이 좋아 교사로서 정년퇴직을 할 수 있는 것이 후배들에게 미안했다.

성훈의 별명은 땡돌이였다. 4시 40분 땡 하자마자 학교에서 일등으로 퇴근을 한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젊었을 때는 성훈도 승진하기 위해서 학교일도 도맡아 하고 교육청에서 일하는 선배 일을 일부러 찾아다니며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좌절과 실망, 그리고 환멸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늦은 퇴근 덕분에 세 아이를 키우던 아내와 사이가 나빠지면서 성훈은 승진을 포기했다. 평교사로 남기로 결심하고 나니 학교 생활이 즐거웠고, 그 해에 맡은 아이들과도 더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운동장 후미진 곳을 살피며 들어오는데 6학년 5반에 불이 꺼진 걸 발견했다. 마침 1층으로 내려오는 신규교사 장희재를 마주친 성훈은 그녀의 얼굴에서 약간의 피로함을 발견했다.

"선생님 이제 퇴근하세요? 오늘도 퇴근이 늦으시네요."

"아, 안녕하세요? 저 때문에 문도 못 잠그시고 죄송해요."

"아닙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안녕히 들어가십시오."

"네 수고하세요."

성훈은 희재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다가 그녀가 나간 교문을 걸어 잠근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와 보안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성훈은 건물을 한 바퀴 돌았다. 여전히 헤드렌턴을 머리에 끼고 교실 안쪽을 여기저기 살피며 혹시 잠기지 않은 교실문이 있는지 확인해 본다.

그러고 나니 밤 아홉 시가 넘어간다. 성훈은 다리를 두드리며 당직실로 들어와 시시티브이 화면을 잘 보이도록 돌리고 간이침대 위에 걸터앉는다. 휴대폰을 꺼내 지영에게 전화를 건다.

"어. 퇴근했어요?"

"아휴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당연히 했죠. 별일 없죠?"

"학교에 별일 있을 게 있나요. 허허. 된장찌개 끓여놓은 거 먹었어요?"

"네 벌써 먹었죠. 역시 당신 된장찌개는 최고고요.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영의 매력 중 하나였다. 그 호탕한 웃음이 좋아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된장찌개는 성훈의 특기 중에 하나인데 일 년에 200일은 먹는 음식이기도 하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많이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또 장모님이 그 연세에도 직접 담그시는 된장 덕분이라고 생각하니 성훈은 아무래도 역시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운이 너무 좋아.'

이 운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성훈은 노란색 믹스커피를 종이컵에 부으며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밤의 학교에는 아무 일도 없다. 세상 어디보다도 안전해야 할 곳이니까, 평생을 낮의 학교를 지켜온 성훈이 이제는 밤의 학교를 지키는 것이 아무래도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성훈은 연신 운이 좋은 스스로가 다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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