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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Oct 27. 2023

39.9세에 결혼합니다

"선생님 잘 지냈어요?"

헉, 전화번호에 저장이 안 된 누군가였는데, 누군지 정말 모르겠다. 그래도 최대한 티 안 나게 받기 위해 노력했다.

"네~"

"선생님 복직 안 했죠?"

"아 네 내년에 해요."

말을 하면서도 이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다. 식은땀이 흐른다.

"나 선생님한테 좋은 소식 알려주려고 오랜만에 전화했잖아~"

어? 이 말투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그리고 좋은 소식? 결혼? 아 생각났어!

"어머, 선생님 혹시 결혼해요?"

"하하하하 그래요. 결혼한다고 오랜만에 전화해서 미안해요."

"어머어머 아니에요. 선생님 지금 학교 어디에 있죠? 옮겼잖아요."

"맞아요. 결혼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서 작년에 00으로 옮겼죠."

"그러게요 1년 남은 걸로 아는데 옮기셔서 학교가 힘들어서 옮겼나 했죠."

그래, 자연스러웠어. 이제 누군지 알았으니 더욱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왜 이 선생님 전화번호가 저장이 안 되어 있지?

아마도 큰 아이의 키즈폰 계정이 나와 연동이 되면서 삭제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삭제된 전화번호가 여러 명이다. 

도대체 아이들과 나와의 분리는 언제쯤일까.

왜 아이들의 구글계정까지 내 걸 사용해야 하는가.

둘째 아이 키즈폰을 해주면 계정이 얼마나 혼돈을 이룰지, 뭔가 방법이 있을 텐데 모르겠다.

어째 되었든 간에 아이들과 나의 독립을 위해(일단은 16세 이상이 돼야 뭐가 됐든 우리는 분리가 되겠지.) 오늘도 잘 살아야지. 나중에 독립 못해서 내 피와 골수를 쪽쪽 빨아먹도록 내버려 두진 않겠다는 나의 다짐이다.


누구나 태어나면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야 하고, 그건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경제적으로 독립을 했더라도 정신적으로 분리가 잘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남편과 결혼하고 시어머니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나는 너한테 다 맡긴다. 네가 다 알아서 해라."

뭐 시댁의 행사 따위를 맡기겠다는 게 아니고 어머님의 아들을 나에게 맡긴다는 뜻이었는데, 그건 어머님 입장이고, 결혼하는 배우자 입장에서는 내가 왜, 내 아들도 아닌데, 다 큰 성인 남자를 맡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 넘은 아들이 결혼을 하고 나니 어머님은 마음이 편해지셨는지 모르겠지만 아직 서른 초반인 나는 그 말이 불편하고 싫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어느 한 명이 아니라 둘이서 서로를 보살펴주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여자들이 주로 남자의 엄마 노릇을 하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빨래해 주고, 청소해 주고 애 낳아서 키워주고, 밥 해주는. 


남편은 결혼 전과 똑같이 회사에 다니는데, 심지어 밥도 안 하고, 빨래도 안 하고 청소도 안 한다. 공짜로 가사도우미를 하나 얻은 셈이니 개이득이다.

나는 결혼 전과 똑같이 근무를 하지만 퇴근하고 미친 듯이 달려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육아를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밥도 한다. 애들이 싸우면 중재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줘야 하며 놀이터에서 멍 때리고 앉아있어야 한다. 이건 너무나 손해 보는 장사다.


"선생님, 결혼은 그래도 해봐야 하는 거죠?"

그녀는 그렇게 물었다. 

여전히 결혼은 여자가 손해라서, 나는 그녀에게 "지금 내 입장에서는 안 하는 걸 더 추천하지만, 안 해본 사람은 뭐, 해보는 것도 괜찮겠죠."

이건 뭐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는 대답을 해놓고도 우리는 하하하하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년이면 40이 되는 그녀는 올해 12월의 신부가 된다. 


"에휴 선생님은 뭐 다했지 뭐, 애들도 다 컸고, 취미생활하고."

육아는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다는 걸 왜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았을까, 아니, 누군가는 분명 말해줬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귓등으로도 안 들었을 뿐.

나도 그녀에게 분명히 말했다.

"다 키우긴, 아직도 손이 많이 가요. 육아는 끝나지가 않아요."

그녀는 아마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인류가 유지되는 이유는 듣고 싶은 말만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뇌가 걸러서 듣는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면 아마 인간은 진작에 멸종되었을지도.


나는 언제쯤 아이들을 독립시킬 수 있을까. 결혼을 시켜야지만 독립이 가능하다면 내 아이들에게 결혼을 추천해줘야 하는 걸까. 굳이 추천해주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이거 오도 가도 못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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