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해 Jun 23. 2023

상호대차를 금지당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작은 도서관들까지 합쳐서 총 19개의 도서관에서 상호대차를 할 수 있다. 상호대차란 구립도서관에 속하는 도서관끼리 타 도서관에서 대출과 반납을 대신해 주는 서비스다.

빌리고 싶은 책이 원래 가는 도서관에 없는 경우 다른 도서관에 상호대차를 신청하면 도서관 이용 가능한 요일 기준으로 하루나 이틀정도면 책이 도책했다는 알림이 온다. 심지어 다른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도 가까운 도서관에서 반납처리까지 해주니 책 읽기 너무 좋은 시절이다.

라떼는 말이야, 하며 내 어린 시절을 읊자면 여덟 살짜리 우리 아들은 진지한 얼굴로 "엄마, 어릴 때 도서관이 있었어?"라고 물어본다. 일 년 전 나를 웃게 만들었던, "엄마 어릴 때 고인돌이 있었어?"라는 말처럼 들리는 황당무계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응, 엄마 청동기시대 사람 아니거든.


이십 대 초반시절까지만 해도 지하철을 타고 가서 책을 빌리고 반납하곤 했다. 물론 대학교에 도서관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는 신나게 책을 빌리던 기억이 없다. 학교 도서관은 과제하고 공부하는 곳이었지, 순수하게 책을 빌리는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던지, 아니면 국공립이었던 우리 학교에 신작이 별로 없어서 빌릴 책이 없었던지, 둘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등록금이 비싼 사립대학교의 도서관은 더 멋들어졌을까, 궁금하지만 가본 적이 없으니 모르겠다.

요즘 초중고에는 거의 대부분 도서관이 있고, 심지어 아이들이 볼만한 책도 많다. 그런데 내가 대학교 시절에 우리 학교 도서관을 잘 이용하지 않았던 것처럼, 공공도서관에서는 예약을 걸 수도 없을 만큼의 인기절정의 도서가 학교 도서관에는 버젓이 책꽂이에 꽂혀있어서, 그걸 발견한 순간 산삼을 발견한 것처럼 "심봤다"를 외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이들이 책 읽기 얼마나 좋은 환경에 놓여있는지 스스로 알기는 어려울 테다. 1990년대를 지나오던 십 대의 나에게 당시 어른들이 "세상 좋아졌다."를 외쳐댔으나, 별로 그런 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도서관에서 인기도서를 대출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예약을 무한정으로 받아주는 것도 아니고, 3명이 꽉 차면 더 이상 예약조차 할 수 없다. 매일 도서관 어플을 새로고침하며 예약자가 2명이 되는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그런데 6월 초중반에 집안에 일이 많이 생기면서 시가에 내려가야 했고, 주말에 새벽부터 저녁까지 다른 지역에 가 있어야 할 일들이 겹치면서 예약을 걸어두거나 상호대차를 신청해 두었던 책의 대출을 미처 할 수 없었다. 예약책이나 상호대차 책을 빌려가지 않았을 경우에 뭔가 불이익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동안 가끔 일정이 맞지 않아 빌려오지 못해도 딱히 제재가 가해지지 않아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최근에 상호대차를 연속 두 번이나 받아가지 못하고 나서 나는 며칠 동안 상호대차를 신청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이런 제제는 당연하다. 하지만 그동안 상호대차를 자주 이용했던 것도 아닌데 막상 이용하려고 할 때 할 수 없으니 아쉬운 건 사실이다.


내가 해야 할 노동을 누군가 대신해 주는 기분이 들어서 상호대차로 책을 빌리고 반납할 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특히 20권이나 되는 책을 타도서관에 반납할 때는 "아이고 죄송합니다."소리가 절로 나온다. 상호대차를 신청했으니 그 책을 누군가는 이동시켰을 것인데, 빌리지도 않고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보내야 하는 건 대단한 노동력 낭비에 기름낭비가 아닐 수 없다.


무엇인가 금지당한 인간이란 꼬리표가 썩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나 어쩌랴, 내 잘못인 것을. 이토록 책 읽기 좋은 시절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아이들에게 씨알도 안 먹힐 얘기를 해 댈 필요도 없고 그냥 책 읽는 엄마의 모습이 최고의 교육이라던데, 아직 우리 집 아이들은 나보다 책을 안 읽는다. 어제도 인스타에서 본 책 많이 읽는 어린이들의 모습에, 또 비교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일었지만, 누가 나에게 책을 가져다주면서까지 떠먹여 주는 책도 안 빌려오는 주제의 내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우리 집 어린이들이 나보다 책을 더 많이 읽게 되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상호대차를 금지당했으니 직접 출동할 수밖에, 하며 빌리고 싶은 책이 어느 도서관에 대출가능한지 검색해 본다. 대출가능한 도서를 검색하는 것 또한 너무 감사한 일 아닌가 싶어서 세금을 내는 게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집순이 맞춤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