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초보 시절, 좌회전 차선의 맨 앞에 서있었다. 나는 맨 앞이 싫다. 너무 뒤는 신호가 바뀔 수 있으니 사양하고, 두 번째나 세 번째가 괜찮다.
초보라서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전방주시'만 했다. 옆 차를 슬쩍 볼 여유도 없다.
내 앞에 초록불이 들어왔고 순간 뒤에서, 아니면 옆에서 빵- 소리가 들렸다. 나에게 빵을 주는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좌회전을 했다. 내가 좌회전을 하고 나서 반대차선의 차들이 직진을 했다. 0.1초 차이로 사고를 면했다. "나 죽을 뻔했어. 죽을 뻔했어."를 백 번쯤 말하며 출근을 완료한 나의 겨드랑이는 물바다였다.
이후 나는 빵에 연연해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트라우마? 빵소리만 들려도 "어디야, 누구야, 나야?"라는 마음속의 외침과 함께 내 신호를 다시 확인한다. 신호를 확인하기 전에 핸들먼저 돌리지 않는다. 절대.
운전을 하다 보면 어디선가 빵을 줄 때 나에게 주는 건지, 다른 사람들끼리 주는 건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럼 나는 무척 신경 쓰인다. 솔직히 나에게 빵을 줘도 무시하면 그만이다. 내가 교통질서 속에서 그렇게 큰 트러블 메이커만 아니라면 말이다.
남편이 운전 연수를 해줄 때 가르쳐 준 게 있다. 사람에게는 빵을 주지 말 것.
아무리 무단횡단을 하더라도 사람이 지나가는데 빵을 날리면 걷고 있던 사람이 놀라서 오히려 뛰거나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얼마 전, 나는 또다시 좌회전 차선에 서있었다. 보행신호가 들어왔고, 중학생쯤 되는 친구가 핸드폰을 보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순간 내 옆차선에 서있던 차가 빵-빵-빵-경적을 심하게 울렸다.
-도른 자인가. 미쳤나. 지금 보행신호라고요.
길을 건너던 학생도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내 옆 차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3차선에서 진짜 도른차가 쌩하고 지나가는 게 아니겠는가.
내 옆차가 사이드미러로 속도를 내며 달리는 옆 차선의 차를 보고 학생에게 경고를 했던 것이다.
학생이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끔찍했다.
사람에게 날려도 좋은 빵은 이런 빵이다.
이후 나는 무조건 빵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경고는 꼭 필요하다. 타이밍을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누군가 나에게 충고를 건네는 것을 참으로 싫어하게 된다. 아니, 나이가 어려도 충고를 기쁘게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리 좋은 충고라도 그 속에는 "나의 잘못과 결함"이라는 전제조건이 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잘못한 후에 충고하는 것보다는 잘못이 일어나기 전의 조언이 더욱 효과적이다.
아이를 양육할 때도 잘못한 순간에 가르치기보다 평소 기분이 좋을 때 삶의 가치와 마음가짐을 꾸준히 이야기해주라고 한다. 잘못이 일어난 후에 아무리 빵빵거려도 기분만 나쁠 뿐인 경우를 우리는 허다하게 보지 않는가. 빨간색 경차의 운전자분이 사고가 일어난 후에 아무리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듯이 말이다.
그나저나 보행신호도 무시하고 급하게 지나갔던 빨간색 경차는 급똥이었을까. 아무리 급똥이어도 똥보다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걸 인식하고 도로로 나와주시기를.
초보시절 나처럼 다행히도 사고를 면했으나, 그 이후 트라우마가 되셨기를. 그래서 신호를 철저히 지키는 모범 운전자가 되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