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해 Jan 03. 2023

손절을 당해본 적이 있다.

인간관계의 개이득?

2022년의 마지막 날, 아빠의 생신이었다. 늘 음력으로 챙기던 생신은 보통 1월에 있었기 때문에 느긋했는데 올해는 12월 31일이라니, 완전히 잊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핸드폰 캘린더에 저장을 해두어도 앱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잊고 지나가는 일들이 자꾸만 생긴다. 꼭 기억해야 하는 일들은 스마트폰이 알려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내가 스스로 챙겨야 하는데, 사람 사는 일이 그렇게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잊어버린 채 지나간 기념일들은 내 마음과는 다르게 흘러가기 일쑤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닌데, 나의 진심인 것처럼 타인들에게 오해만 잔뜩 남긴다.


어차피 그런 건 관심의 소산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관심이 없기 때문에 기념일도 잊는 거라고.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어도 내 생일은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 말에 어느 정도는 수긍한다. 

나의 관심이 거기까지라는 것도 인정한다. 나와 타인은 다르고, 내가 나에게 더 관심이 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조금 억울할 때도 있다. 분명 어제까지는 기억했는데, 마침 오늘 까먹었을 때. 다음날이 되어서야 "앗, 미안해. 어제 생일이었지." 하며 연락하기가 잘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면서, 연락을 해야 하는데 지나버렸으니 뭐라고 하지, 멘트가 너무 약한데, 기분 나빠하면 어쩌지. 따위의 걱정으로 다시 일주일, 이주일이 흐른다. 이쯤 되면 나조차도 변명이 좀 시답잖게 들린다.




흔히들 결혼을 하면서 인간관계도 함께 정리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대체로 갑자기 연락이 와서 "나 결혼해."나 "000의 조모께서 별세하셨습니다. 빈소는.." 같은 메시지로 안부를 묻곤 하는데 그조차도 나는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라는 고민을 별로 하지 않는다. 일단 나에게 연락이 왔다면 몸으로 직접 가지는 못하더라도 성의를 표시하는 편이다.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뒷말이 나오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해서 일 수도 있고, 남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하는 몹쓸 체면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인간관계를 능동적으로 정리해 본 적이 없다. 주로 정리를 당하는 쪽이랄까.

나한테 소원하다고 해서 손절해야겠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 까닭은 나 또한 그에게 소원할 때가 많기 때문인데, 연락이 부족하다고 손절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못 느끼는 까닭이 가장 크다. 



한때는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있었다. 연애, 일, 가족 이야기 등 모르는 게 없던 사이였다. 그녀는 주로 끊이지 않고 연애를 해왔고, 나는 이십 대 초반 이후 연애를 해 본 적 없는 상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초고속으로 결혼을 한 케이스다.

그녀의 연애는 길고 질겼고, 시큰둥할 때도 있었으며, 한 때는 미친 듯이 빠져든 남자도 있었다. 그러한 연애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사실 부러움이었다. 이별과 새로운 사람으로 이어지는 패턴 사이에 공백은 거의 없었고, 나는 십 년 동안 지루한 소개팅만으로 점철된 생활을 했다. 

그러던 내가 만난 지 6개월 된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될 즈음, 그녀는 처음으로 맞은 연애의 공백기로 외로워하고 있었으니 나의 결혼이 탐탁지 않았을 수 있다. 


결혼식 당일 아침 메이크업을 받고 있던 나의 폰으로 그녀의 카톡이 달려들었다.

-이해야, 나는 네가 연애한다고 나한테 연락도 안 하고 매일 남자친구만 만나러 가고 그래서 많이 서운했어. 그래도 결혼은 축하해. 잘 살아.

머리를 올려주는 헤어디자이너 선생님의 손길에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내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물론 서운했을 수는 있지만, 이 카톡이 나에게도 많이 서운했다. 나는 거의 처음으로 연애다운 연애를 했던 건데, 서운했구나. 그리고 오늘은 내 결혼식인데, 서운함을 굳이 오늘 알릴 필요가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 후 그녀와는 영영 소원한 관계가 되어 버렸다. 그녀가 나와 같이 결혼 육아의 터널로 들어갔다면 몰랐겠지만 아직 화려한 싱글로 살고 있으니 우리 사이에 접점이 더 이상은 생길 수 없어서 더욱 그러했을 테다.

아마 그녀의 손절 목록에 내 이름이 올랐을 거다. 씁쓸하지만 이제는 내가 먼저 카톡을 보내도 뜨뜻 미지근한 그녀의 답장을 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손절이란, 경제 용어인 손절매(앞으로 주가가 더욱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가격 상승이 보이지 않는 경우, 가지고 있는 주식을 매입 가격 이하로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일)의 준말이다.


인간관계에서 더 이상 나에게 이득이 없을 것 같으면 그동안의 노력이 아까워도 버린다는 손절이라는 단어는 과연 사람 사이에 이득을 따져야만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물론 득이 있는 관계를 맺는 게 누구에게나 좋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심지어 내 영혼을 갉아먹는 사람이라면 끊어내는 건 당연하다. 함께 있어 발전 가능성이 없다면 각자 갈 길 가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절을 당해야 한다면 좀 서글프다는 거다. 


학교에 있다 보니 나에게 1,2월은 헤어짐의 시기이다. 학생들과도 헤어지고, 동료들과도 헤어짐이 생기는 계절. 날씨까지 춥고 우중충하면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사람들이 생각난다. 

새로운 인연들 속에서 깊은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나는 누군가에게 이득이 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게 조금 쓸쓸하고 처량하다.





사진 출처 픽사 베이









작가의 이전글 새해 첫날 시어머니께 카톡이 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