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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 Jan 02. 2023

새해 첫날 시어머니께 카톡이 왔다.

전화에 울렁증이 있습니다


새해 첫날 아침에 시어머니께서 카톡을 보내셨다. 아무런 멘트도 없이 해가 떠오르는 사진 한 장.

어머니는 전화에 대해 부담을 주시지는 않는다. 그냥 나 스스로 그것을 부채처럼 안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빚을 갚아나가지 않는 게 나의 가장 큰 문제랄까.


나는 먼저 전화하는 일이 거의 없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 때 가장 마음이 쓰이는 부분은 "지금 통화 가능하지 않으면 어떡하지?"이다. 통화하기 안 좋은 타이밍이면? 바쁘면? 내 전화가 달갑지 않을 텐데, 짜증이 날 텐데, 따위의 걱정들이 쉽게 발신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한다.


게다가 왜인지 모르겠지만 전화울렁증이 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삼일쯤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다가 심호흡을 백번쯤 하고 큰 마음을 먹어야 전화를 걸 수 있다.

그 누군가가 심지어 콜센터같이 공적인 용무가 있는 일이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금 해지하고 싶은 보험도 전화 걸기 어려워서 그냥 두고 있다. 이 정도면 병적인가?


전화 울렁증이 이러하니, 오랜만에 연락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먼저 전화하지 못한다. 그럴 때는 거의 카톡으로 안부를 묻곤 하는데 이 경우, 카톡이 제법 만만하고 쓸만하다.

먼저 안부를 물어보고 나면 마음이 참 시원하다. 정말 나에게 연락이라는 게 부채가 맞나 보다.

"그냥 연락해 봤어." 만큼 "네가 보고 싶었어, 너의 안부가 궁금했어."를 담아내기 좋은 멘트도 없는 것 같다. 그냥 연락해 볼 때는 꼭 오늘이 아니어도 된다. 내일 해도 되고 일주일 뒤에 해도 된다.


쉽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카톡의 역할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연결시켜주는 매체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사실 카톡이 부담스럽다. 특히 생일 알림은 난감한 항목 중에 하나이다. 늘 알림을 꺼놓았던 나는 생일이 되어도 축하 인사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 서운하냐, 절대 아니다. 그 와중에도 내 생일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재작년에 카톡을 새로 깔고 나서 알림 해제를 해 놓지 않아 생일 노출이 되었다. 뭐 내 생일이 노출된다고 해서 생일 축하 메시지가 우수수 쏟아지는 건 아니다. 단지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거리감이 있는 몇 명이 생일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넸던 정도. 그녀들의 친절과 상냥한 성격은 부럽고 질투 난다. 그러나 나에게 필요한 거리감을 넘어서서 다가오는게 조금 부담스럽다.

그녀들건네었을 의미 없는 말들 나 혼자만 부담스러울 뿐, 답례를 원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인건 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건 누군가 나에게 마음에도 없는 연락을 하는 거다. 그 연락에는 자기에게 연락을 먼저 하지 않은 나에 대한 원망 같은 게 녹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냥 해봤어, 같은 마음 촉촉해지는 연락 말고, 마음에도 없는 연락 말이다. 주로 어른들, 특히 시댁에서 걸려오는 전화 같은 게 그렇다. 시댁어른들이 좋고, 잘해주시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결혼과 동시에 그분들께 연락을 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임무를 소홀히 했을 때 해야 할 일도 하지 않은 되바라진 애가 돼버리니까.


그러나 나는 꿋꿋하게 전화하지 않는 애로 살고 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우리 엄마에게도 전화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주말부부인 남편에게도 먼저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다. 어떨 때는 일주일 동안 서로 전화한 적이 없을 때도 있다. 그래도 서운하지 않다. 나에게는 연락의 빈도와 애정의 강도는 비례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 연락온 시어머니의 카톡에는 결국 저녁이 되어서야 전화로 답해드렸다. 십 년쯤 되었으니 어머님도 이해하시리라 믿는 건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카톡으로 한 줄 보내는 것보다는 전화통화를 하고 나니 빚을 몇 만 원쯤은 갚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후련할 걸 진즉 했으면 좋았잖아,라는 생각은 늘 전화를 끊고 나서 하게 되는 게 또 문제라면 문제다.


노출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SNS로, 전화로, 카톡으로 마음만 먹으면 쉽게 연락할 수 있는 편리함 뒤에는 나같이 전화 한 번 하기 위해 삼일을 고민해야 하는 사람의 고충도 존재한다. 정말 인간은 참으로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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