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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 Jan 06. 2023

내 이름을 불러주오

이십 년도 더 전에, 티브이에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다. 선생님이 한 학년 아이들 이름을 모두 외워서 성공하면 상품을 주는 그런 거. 

서울도 아닌 도시 변두리에 있는 우리 학교에 방송국 사람들이 왔을 리는 없고, 어느 날 한문선생님이 우리 반에 들어오더니 당시에 교사들이 꼭 들고 다니던 막대기 같은 걸로 애들을 한 명씩 가리키며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여자 아이들 몇 명을 편애하기로 우리 사이에서 유명했기 때문에 내가 몹시도 싫어하는 인간군상 중 하나였다. 느끼하게 올빽으로 머리를 올리고 다녔다는 것이 생각나는 교사다. 내가 그를 싫어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인상이 굉장히 강렬하게도 안 좋게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진짜 올빽이었는지도 정확하지는 않다. 


그를 싫어했던 건 싫어했던 거고, 예민한 열일곱 살에 그것도 존재감 하나 없던 내 이름이 그 사람의 입에서 불려지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결국 예감은 현실이 되었고, 그는 내 자리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냥 지나쳐가 버렸다. 네 이름은 뭐였더라,라고 물어봐 주지도 않았다. 그때의 수치심이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난다.


그는 그 후에 내 이름을 기억했을까. 아니, 졸업할 때까지도 내 이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을 테다. 참, 사람에게 소소하게도 상처를 줄 수 있구나. 이걸 어디 가서 말하면 쫌생이가 될게 뻔한 에피소드로도 기분이 나쁠 수가 있구나. 그따위 느낌이 열일곱 살에게 들었다.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에서야 꽃이 되어 왔다는 옛 시인의 말처럼 뭐, 나는 그의 꽃이 되고 싶지도 않다만.

사실 나조차도 그 티처님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으니 서로의 꽃이 되지 않아 비긴 건가.




이십 대 후반에 소개팅을 참으로 많이 했었다. 그때 만난 남자들 중에는 이름을 잘 부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이해씨, 무슨 음식이 좋으신가요."라고 해주면 내 마음이 그리도 사르르 녹았다. 

그런데 "그쪽은 어떤 영화 좋아하세요?" 나 "그쪽분은 어떠세요?" 이러면 있던 마음도 사라져 버리곤 했다. 

지금의 남편은 첫 만남부터 연애기간 동안 줄곧 서로를 "00씨"로 불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존대를 하게 되었고, 그게 사람을 참으로 달뜨게 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서로에게 반말을 퍼붓는 사이가 되었지만.


어느 나라에서는 결혼한 여성의 성이 남편을 따라간다. 문화적인 차이를 차치하더라도 결혼하고 나서 남편 성으로 바꾸라고 하면 나는 과감히 싫다고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어릴 때 불리던 이름을 죽을 때까지 가져가는 우리나라의 이름 문화가 좋은데, 실상은 내 이름이 잘 불려지지 않는 게 문제다. 

늘 이름으로 불리던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는 다른 호칭이 하나씩 생기기 때문이다. 

아줌마, 이모, 고모, 외숙모, 엄마, 할머니.


한국엄마들은 서로를 자기 아이의 이름으로 불렀다. 이를테면 지연의 엄마는 지연 엄마라고, 에스터의 엄마는 에스터 엄마라고 불렀다. 나는 그분들의 진짜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 자신의 정체성이 자기 아이들에게 흡수되어버린 것이다.
- H마트에서 울다 


아이를 낳고 누구 엄마라고 불릴 때 벅찬 행복과 감동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렇다면 그런 행복 따위 느껴보지 못한 나는 나쁜 엄마인가.

아이를 낳았는데 어느 날 시아버지께서 "다미애미야 어쩌고 저쩌고"로 시작되는 카톡을 보내셨다.

애미. 애미. 애미

다미엄마도 아니고 다미애미라는 말에 질겁을 했다. 사전적 의미는 궁금하지도 않았고 그냥 "애미"라는 말이 너무 싫었다.

이름으로 불러줬으면 좋겠다. 간절했다.

하지만 나는 말대꾸할 수 있는 며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고, 지금도 슬프지만 시아버지는 나를 그렇게 부르신다. 




누군가가 나를 이름으로 불러주는 게 좋다. 

그래서 학부모님께도 '예서 어머님'이 아닌 '한서진 님'으로, '수한 어머님'대신 '진진희 님'으로 부르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또는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커서 성인이 되면 나에게 '엄마'가 아닌 '이해씨'라고 불러달라고 해야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펼쳐보기도 한다.














작가의 이전글 손절을 당해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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