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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무섭지, 좀비가 무섭냐

내 취향이 어때서

by 새벽책장
"나는 여전히 스릴러를 좋아한다. 그 사실은 종종 나를 괴롭게 한다."
「아무튼, 스릴러」 이다혜


주변에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도 온라인으로나마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망정이지, 과거에 살았다면 여전히 나는 내가 굉장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우중충한 날씨를 좋아한다. 그런 날 "와 날씨 좋다. 내가 좋아하는 날씨야."그러면 엄마는 "너는 참 이상해. 맑은 날이 좋지. 어떻게 이런 날이 좋냐. 하여간 별나." 하곤 하셨다.

나는 내가 진짜 이상한 사람인가 좀 못난이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자라왔다.


지금은 교육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아이들 본연의 개성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나에게는 상식이 되었다. 아이들이 무얼 해도 괜찮다. 그래서 "그럴 수도 있지."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나도 어려서부터 많이 듣고 싶었던 말들인데, 남에게라도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 '풀하우스'나 '인어공주를 위하여'같은 순정만화 이야기를 꽃피울 때 나도 또래에 끼고 싶어서 억지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막상 읽으면서는 나름 재미있었지만 누가 빌려주면이나 읽지, 내가 나서서 빌려 읽지는 않았다.

그때 나는 탐정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가 탐정이라는 직업은 없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그럴 리 없다며 집에 와서 울었던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는 아가사 크리스티, 코난 도일, 모리스 르블랑 같은 고전 추리 작가를 주로 읽었는데, 요즘에는 더 다양한 형태의 소설들이 쓰여서, 읽는 나는 행복할 지경이다. 특히 히가시노 게이고, 요 네스뵈, 미야베 미유키에, 정유정이나 정해연 같은 한국 작가들도 사랑한다.


스릴러와 추리 모두 사람이 죽고 범인이 나와서가 아니고, 인간의 내면과 심리를 들여다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여러 단서들을 글에 숨겨두고 너무도 개연성 있게 풀어나가는 글의 전개를 읽다 보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단연코 나는 활자를 더 좋아하지만, 딱 하나 영상물로 보는 걸 좋아하는 장르가 있다.

바로 좀비물이다. 웬만큼 친한 사람 아니면 좀비물을 좋아하냐고 물어볼 수도,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마치 "이번 회식 메뉴는 삼계탕 하고 추어탕인데 미리 주문하게 골라주세요."라는 메신저를 받고 추어탕을 골랐다가, 메뉴별로 테이블이 따로 세팅되어 있어서, 추밍아웃을 해버린 꼴이랄까.

그때 추어탕 테이블에는 부장님, 부장님, 부장님, 부장님 그리고 나. 이렇게 앉았던 기억이 난다.

아, 나의 취향은 왜 이렇게 남다를까.


얼마 전 좀비물의 시조 격인 미드 "워킹데드"가 시즌11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좀비물이라는 특성상 많은 인물들이 죽었고 새로운 인물들이 투입되었지만 시즌 1부터 쭉 살아남은 인물도 물론 존재한다. 많은 캐릭터가 나오지만 결국 끝까지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은 캐릭터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워킹데드의 주인공은 '러브 액츄얼리'의 '스케치북 고백남'으로 알려진 앤드류 링컨인데, 나에게는 스케치북 고백남보다 워킹데드의 릭 그라임스가 더 매력적이다. 솔직히 친구의 부인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왜 로맨틱하지. 뭐 이런 생각을 했다면 러브 액츄얼리한테 미안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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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앤픽쳐스 러브액츄얼리 / 미국 AMC 워킹데드

좀비물의 주인공은 좀비가 아니다. 인간이다. 좀비라는 거대한 재앙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모습은 생각할 거리가 많다.

워킹데드에서도 결국 인간이 싸워야 할 존재는 좀비가 아닌, 바로 타인과 나라는 관계이다. 특히 개개인의 성장과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에게서 감동을 받는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과연 그리할 수 있을까.

심리학이나 인문학을 쉽게 풀어놓은 책들도 참 많다. 그런 책에 나오는 예시들이 스릴러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벽돌책에 질린 독서가들이라면 인간을 알고, 감동을 얻기 위해 스릴러를 읽고 좀비물을 보라고 권해본다.


좀 별나 보이면 어떤가, 결핍이 있어 보이면 어떤가 말이다. 추어탕을 좋아하는게 죄가 아니듯, 좀비물을 좋아한다고 내가 좀비는 아니잖아? 그럴 수도 있지, 특이해도 괜찮아.


그런데 과연 이 글은 공감하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있다면 친하게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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