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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Lim Apr 12. 2017

책에 관하여 - 1

책을 읽다.

 평소 책을 많이 읽어왔다면, 혹은 평소 생각을 많이 해왔다면, 혹은 평소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뽑아내는 작업을 스스로 해왔더라면, 어떤 책 한 권에 흔들리면서 '이 책이 최고다. 여기에는 진리가 담겨있다' 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A라는 책이 있다고하자. 많은 키워드를 담고 있다. 내용은 좋다 훌륭하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자.


주운건 많으나 담긴게 없다. 

내용은 있으나 증거가 없으며,

선지자의 소리보다는 행인의 신변잡기가 있다.

실무자의 피드백보다는, 꼰대의 피드백이 있다.

책이 말하는, 의견발화는 없으나 쟁점발화는 있다.

책이 보여주는, 의견수용은 없으나 꼰대는 있다.


즉 의미가 없다는 소리다. 정말 이런 책들이 있다.

물론 이런 책에도  감상은 있다. 모든  글에는 감상이 존재하니까.

'아 배고프다' 이 글에도 감상은 있다. '아 이 친구가 배고프구나' 라는 정보라는 감상을 얻는 사람도 있을테고 '뭐야 병신' 이런 감상 얻을수도있을테고, '?' 아무 생각없는 감상도 있겠지. 감상이란건 감정/감성과 맞물리면서 '팡' 하고 터지는 것인데 주로 위에 언급한 책 같은 것은 마치 감상을 이성과 맞물리게 하면서 '파바바바바바방' 터트리는 듯한 '착각'을 선사해준다. 동기부여 입장에서는 굉장히 훌륭한 책일지 모르지만, 저런식의 부스터를 몇 번해주다보면, 그 독자가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짜인 것들'을 결국 놓치게된다. 그리고 그 독자는 평생 그런것들을 마주하지 못한채 살아갈수도 있겠지. 원래 책이란게 그렇다. 언어란건 너무나도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그 진짜란 내가 여기에서 짧은 글로 표현 못하겠다.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고 한 1초정도 만났던 기억은 있다. <드래곤 레이디>라는 소설 책을 읽고 1초정도 만났던 기억이 있고, <7년의 밤>을 통해 1초정도 만났던 적이 있다. <룬의 아이들>을 통해 만난 적도 있으며, <굿모닝 티쳐>라는 만화책을 통해 만난 적도 있고 <매거진 B : 츠타야 >를 통해 만난 적도 있다. <온워드>를 통해 만난 적도 있다. <내 여자친구는 여행중>을 통해 만난 적도 있고.

그런거다. 책을 통해 얻는건 책뿐이 설명을 못한다.

그래서 책 읽는 사람은 계속 책을 읽을뿐이다.

계속해서 대화할뿐이다.


어떤 책이, 그러니까 A라는 책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A라는 책이 자신이 최고라고 계속해서 스스로가 가장 빛나는 별이라고 외친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안타깝고 슬플것 같다.


책은 빛나지 않는다. 단지 책 속에 빛이 담겨있을뿐이다. 그리고 그 빛은 절대 스스로 흘러나오지 않는다. 한 명의 사람이, 두 명의 사람이, 그 빛을 발견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책을 빛내준다. 그렇게 빛이 된 책들이 있다.


다들 빛을 품고 있는 책을 찾는 즐거움을 알 수 있다면 좋겠다.


누가 빛난다고 외치는 책은, 실제로는 행성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항성은 스스로 빛을 내어 행성을 비추어주지만, 행성은 빛을 받아 그 빛을 '낼' 뿐이다. 모두가 항성을 만나고, 항성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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