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찬균과 실찬균
언제부턴가 글을 쓰는 행위에 중독되었다.
이 글을 쓴다는건 결과물은 결과물이고, 무엇보다 글을 쓰면서 만나는 나 자신의 날것의 생각과 행동을 목도하는게 너무나도 즐거웠고 그리고 가끔 만나게되는 의식 깊은 곳의 저변들을 보면서 '아니 내가 이딴 위험한 생각이 깔려있었다니!' 내지는 '아니 내가 이렇게 존나 멋진 놈이었다니!'등의 deep한 의식 기반의 만나는 것들이 진짜 엄청난 카타르시스에 오르가즘에 저는불자인데천국을보았습니다와 같은 느낌에 비빔면 1.5개를 끓여서 찬물에 적절히 식혀서 먹은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아는 기분좋은 상태 총동원)
무언가 글을 쓴다는건 글을 쓰는 나와 실제 존재하는 나가 만나서 서로 협의하면서 이야기를 써내려나가는 것 같다.....아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내게 해준말인데, 나는 글찬균과 실찬균이 존재한다고 한다. 정말 맞는 말 같다.
나의 실제 삶은 실찬균이 살아가지만, 글을 쓸때는 글찬균이 등장하여 실찬균을 심문하거나 같이 술 한잔 하거나 꼬시거나 혹은 압박면접을 하거나해서 글감을 토해내게 하여 써 내려가는 것. 정말 이런 것 같다.
그래서 실찬균이 충분한 삶을 살아내지 않으면, 충분한 '꺼리'가 존재하지 않으면 글찬균은 글을 못 쓴다.
이번 글의 글찬균은 실찬균을 심도있게 심층면접했다기보다는, 자꾸만 실찬균이 생각에 빠지고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하고 있길래 글찬균이 툭 튀어나와서 그 정리를 도와주는격이다.
자 그렇다면 지금 나는 무엇때문에 생각에 깊이 빠지고,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가? 무엇때문에 열렬히 내 자신을 생각하고 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이 모든 것들을 글자로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을까?
그렇다. 지금 나는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취향 혹은 가치관을 품고 있는 곳이 다섯 군데 정도가 리크루팅을 하고 있어서, 설렘을 안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다. 나름의 철칙이 있다면, 한번에 한 곳만 쓴다. 그리고 그 한 곳에서 내 이력서를 열람한 이후 이삼일 정도 연락이 없으면, 떨어졌겠거니 하고 다음 곳에 대해 글을 쓴다.
매번 내는 곳마다 자기소개서의 내용이 전혀 다른데, 이는 당연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나로 존재하지만, 내 취향이 TPO별로 다양하게 발휘되듯, 기업들도 원하는 사람의 방향이 그 사정에 따라 다양할테니까. 마치 이쪽에는 아메카지룩을 입고 소개팅을 나가는 것 같고, 저쪽에는 정장에 행거칲을 준비해서 소개팅을 나가는 것과 같다.
물론 TPO에 맞춰도 안될 때도 있다. 예컨대 '아니 님 옷이랑 관계없이 님이 제 취향이 아니에요 ㅇㅅㅇ' 하면 할수없지.
아. 존나 열정을 폭발시키고싶다. 일하게해주세요. 요즘만큼은 글찬균이 자주 나와서 실찬균을 자주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찬...찬균이는 제 이름입니다 (급부끄러움 급민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