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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시범 수업

기획자 남편들의 글쓰기, 그림 실력

지난주 토요일, 2024년 7월 13일, 오후 6시에 오디너리 콜렉터의 안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학원 '홍익에제르'에 모여 저희 남편과 안 선생님의 남편이 <어느 특별한 예사로움>의 첫 번째 시험대상자가 되어 시범 수업을 해보았습니다. 각자의 아이를 옆에 앉히고 오디러니 콜렉터가 제안한 10개의 질문지를 보며 에세이를 작성하고 드로잉 작업을 해보았습니다.


10개의 질문은 ice breaking 용으로 제안하는 질문으로 가족과 아이의 소중함을 떠올리기 위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진로를 발견한 것, 커리어의 시작 (이게 중요한 일이라면, 중요하지 않으면 패스…)  

    배우자와의 첫 만남  

    배우자와의 인상 깊은 이벤트 (데이트, 사건, 힘들었던 순간 등)  

    청혼, 약혼, 결혼   

    아이의 임신 소식, 10개월 간의 기다림  

    아이의 출산과 관련된 해프닝 (출산 당시 너무 힘들고 고된 기다림이었다 등등)  

    아이의 100일, 아이의 돌  

    아이가 엄청 아팠던 순간  

    아이로 인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  

    아이가 나에게 주는 가장 큰 행복 (존재에 관련한 행복감)  


예상대로 첫 번째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지금 나보고 손으로 글씨를 쓰라고?"


"네 그렇습니다. 아버님(남편님아...), 손으로 글씨를 쓰셔야 합니다."


사실 워드 프로세서에 익숙한 저도 손글씨로 위의 10개의 질문에 대해 예시 답을 작성할 때 진땀을 뺀 기억이 있습니다. 괜히 손목이 아프고 그래서 손목을 탈탈 털고, 글씨 쓰기가 왜 이렇게 어려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예상했던 또 하나의 시나리오처럼 안 선생님의 공대출신 배우자님은 제시된 문제를 따라 1, 2, 3번... 10번으로 번호를 매기며 단답형으로 에세이를 작성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2. 00이를 소개팅해서 만난 것, 예뻤음. 


명사형으로 종결된 문장은 긴 시간 직장생활을 하며 생긴 문서 작성의 방식으로 너무 자연스럽게 등장했습니다. 마치 보고서를 쓰듯이요. 이 또한 예상한 반응이었습니다. 아버님들의 명사형 종결 어미는 현실의 리얼리티를 더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먹서먹, 어색 어색 열매를 나눠 먹으며 두 명의 아버지들은 "시작하셨어요?" "얼마나 쓰셨어요?" "글씨를 잘 쓰시네요" 심지어 "처음 뵈었을 때 너무 잘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키가 진짜 크시네요."라는 대화를 살금살금 나누며 서로의 빈 도화지를 훔쳐보며 작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저의 남편은 궁서체의 필기체를 자랑하며 (저는 사실 남편의 궁서체를 잘 알아보지 못합니다. 컴퓨터의 폰트에 익숙해진 저에게 궁서체는 가독성이 너무 떨어집니다.) 일필휘지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저희 남편은 지금은 미술품 수출입 통관일을 하지만 본래 영문과 출신으로 시적인 제목을 도화지 위에 달아놓습니다.


"어른 아이"



남편의 추상화 <어른 아이>와 그에 대한 설명, 도화지에 과슈로 채색




저희 남편은 10년 전 서른 살의 꼬마신랑으로 누나와 결혼해서 1년 뒤 31살에 친구들 중에 최연소로 아빠가 되어 그 뒤로는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못했습니다. 빽빽 울어대는 아들을 달래고 신경질 나있는 와이프 눈치를 보며 어린 아빠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갔습니다. 어느 날 베스트 프렌드의 결혼식을 다녀온 뒤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나, 이제 친구들이랑 말이 안 통해. 다들 소개팅 이야기 하고 있어. 지금 웬 소개팅이야, 지금 소개팅할 때야?"


그렇습니다. 본인은 육아를 할 때였고 친구들은 소개팅을 할 때였습니다. 그 뒤로부터 집에서 아이랑 노는 것을 선택한 남편은 집돌이로 "오늘 우리 뭐 먹어?"를 자주 묻고 합니다.




안 선생님 남편 분의 네 컷 드로잉, 도화지에 파스텔로 채색





안 선생님의 남편은 정말 너무나 인상 깊은 드로잉을 하셨습니다. 네 칸으로 도화지에 구역을 자로 반듯이 나누신 뒤 안 선생님의 출산에 대한 만화를 그리셨습니다. 첫 째 출산의 위기와 충격 그리고 둘째 출산 시 새로운 충격적인 기억 등, 배우자의 출산을 마치 자신에게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내셨습니다. 말풍선 대사까지 넣으시면서요.


"닥쳐!"


출산 상황에 어울리는 리얼리티 넘치는 대사를 넣으셨습니다. 물론 "닥쳐!"는 산모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저는 출산에 대해서 어머니가 된 여성들만 생생히 기억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보통 아이 엄마들이 모이면 출산 시의 고통과 예상하지 못한 상황 등 그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거든요. 남편분이 출산의 긴급한 상황에 대해 저렇게 잘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범 수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이렇게 남과 여는 가족이 되나 보다 싶었어요.


그리고 두 아이들은 예상대로 쓱쓱 싹싹 에세이도 잘 쓰고 그에 맞는 드로잉도 잘 그려냅니다. 막히는 것이 없습니다. 아직은 순진 무구한 세계에 사는 9살 아이들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행위에 가깝습니다. 맞춤법만 틀리는 것 빼고요. 맞춤법이야 지금의 저도 '맞춤법 검사' 기능에 의지하니 눈감아 줍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맞춤법을 틀리는 것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그 시절만이 아무렇지 않게 틀릴 수 있잖아요.


"재일 재미있는 사건은 바다에 놀러 가거였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는 문장 너무 귀엽지 않나요?


자신이 그린 그림의 소감까지 밝히고 나서 아버님들은 현실을 사는 가장으로서의 피드백을 주십니다.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10개의 질문도 좋은데, 남자들이 글을 쉽게 쓰려면 "올해 우리 가족의 목표" 이런 걸 쓰라고 하면 어때?라고 ENTJ인 저의 남편이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우와, '가족의 목표'라니요. INFP인 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안 선생님의 남편분은 "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 오래간만에 하고 낯설었지만 옆에서 용기를 주고 칭찬을 해주니 나름 재미있었다."라는 감상도 남기셨습니다. 너무 귀엽죠?


이렇게 오디너리 콜렉터는 시범 수업을 마치고 자연스럽게 동네 식당으로 가서 회식을 했습니다. 각자의 아이 둘을 끼고 총 8명이서 식당 한편을 다 차지하고 왁자지껄하게 식사를 했습니다.


제가 아버지들의 그림을 보고 좌절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제가 착각을 했던 것이 있습니다. 굉장한 착각인데, 저는 13년간 큐레이터 생활을 하면서 아티스트들의 그림으로 전시기획을 하다 보니 아버지들이 그림을 그리면 아티스트들의 습작 정도로 그릴 것이라고 상상을 한 것이죠. 아... 저의 상상이 완전히 그릇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반 고흐의 습작 정도로 완성도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이런 것을 보고 탁상머리 행정이라는 말이 나왔나 봅니다.


처음에 남편과 안 선생님 남편 분의 드로잉을 보고 '어, 나 이걸로 어떻게 전시하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더 생각해 보니 다른 남편분들도 비슷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아티스트가 아닌데, 이왕이면 '리얼리티로 승부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티스트 중에서는 가족의 리얼리티를 아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는 않습니다. 아티스트들이 파트너를 자주 바꾸거나 가족을 외면한 사례가 더 쉽게 회자되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강렬한 리얼리티'를 새로운 목표로 삼고 그 속에 예사로움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글씨 못 쓰고 그림 못 그리셔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일상을 사는 우리가 작품을 감상하게 될 것이니까요.


아버지들, 오늘도 파이팅 하십시오. 김 팀장님, 최 팀장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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