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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밝은 아이들의 이야기

국공립 해누리 어린이집 6-7세 깊은 바다반 수업

오늘 양천구 소재의 국공립 해누리 어린이집에서 6-7세 영유아들을 대상으로 '감정 수업'을 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감정을 투명한 PVC 볼에 아크릴 물감을 활용하여 채색하는 활동입니다. 아이들이 만든 작품은 10월에 오목한 미술관에서 진행될 <어느 특별한 예사로움> 전시의 도입부에 설치하려고 합니다. 본 프로젝트는 글쓰기와 드로잉이 함께 가야 하는 프로젝트인데 영유아들은 아직은 한글 글씨가 능숙하지 않아서 투명한 PVC 볼에 가족에 대한 감정을 채색하는 것을 콘텐츠로 삼았습니다. 한글 글씨 쓰기를 하면 아이들도 힘들고 이 결과물을 본 부모님들이 "00아! 아직도 글쓰기가 이 정도니?"라고 아이들이 잔소리 역풍을 맞을까 하여 글쓰기 내용을 제외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가 아티스트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역시나 아이들은 쓱쓱 싹싹 거침없이 채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아빠, 친구의 형제자매에 대해 느끼는 감정, 마음을 색으로 칠하면 돼요! 여러분 모든 색을 다 섞으면 똥색 되는 거 알죠? 똥색으로 가족을 칠한 건 아니죠? 그렇지만 똥색이 너무 좋다면 그렇게 해도 돼요~"라는 안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아이들을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반짝 거리는 눈으로 "전 흰색이 더 필요해요!", "민트 색은 어떻게 만들어요?" 등등 자신의 요구사항을 적극적으로 밝히면서 작업을 시작한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받고 돌아온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저는 작년에도 국공립 해누리 어린이집에서 6-7세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학부모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미술사 수업을 한 달에 한 번씩 진행해 왔는데요, 아이들은 놀랍게도 미술사라는 어려워 보이는 콘텐츠에 엄청난 집중을 합니다. 예술에 대한 내용을 심도 깊게 배우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의 예상은 아이들이 반고흐, 마네, 모네 등 잘 알려진 명화작가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예상 밖으로 설치미술, 현대미술, 디자이너의 작업도 좋아합니다. 가장 좋아했던 것은 Studio Swine이라는 작가 듀오의 설치 작업 미술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세련된 취향은 놀라웠습니다. 미술사 수업을 하고 나온 날에도 저는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전달받고 돌아왔습니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표정과 웃음은 보는 이에게 행복감을 전달해 주는 것 같아요.



미술사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제일 좋아했던 스튜디오 스와인의 설치 작품



오늘도 아이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미술관에 설치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열심히 집중해서 작업을 했습니다. 저와 안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왜 이런 색을 칠했냐고 물어봤어요. 어떤 아이들은 투명한 볼을 파란색으로, 혹은 어두운 흑색으로, 알록달록한 무지개 색으로 채색을 했습니다.


알록달록하게 채색한 경우는 대부분 "우리 가족은 무지개예요~"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아이들이 생각하기에 무지개는 예쁘고 하늘 위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을 가진 형상입니다. 우리 가족은 '알록달록' 하다고 말합니다. 행복하다는 표현 같아요. 지구를 연상시키는 작업을 한 친구는 가족은 '세상'이라고 합니다. 사실 성인에게는 가족이 전부는 아니죠, 성인에게는 일도 있고, 학업도 있고, 친구도 있고, 연인도 중요한 대상입니다. 그리고 가족은 원래 있는 배경처럼 존재하죠. 그러나 6-7세의 아이들에게는 가족이 아직은 전부인 세상인가 봅니다. 우주를 연상시키는 작품을 만든 친구들이 많았어요. 이런 친구들의 작품을 보면서 느낀 것은 '아, 내가 부모로서 더 잘해야겠다. 모자란 내가 이 아이들의 세상이라니!'였습니다. 한 개인으로서 저는 늘 부족하죠. 화도 내고 신경질도 내고 왜 이리 몸은 피곤한지 모르겠습니다.



6-7세 유아들이 만든 '가족 감정 볼'


아크릴 물감을 처음 다뤄본 친구들도 많았지만 물감이 흐르는 효과를 이용해서 작업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섬세하게 하나하나 스케치를 하듯 불을 섬세하게 다루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재미있었던 것은 아이들이 엄마를 빨간색으로 많이 생각하는 것이었어요. "우리 엄마는 빨간색이에요."라고 말하곤 하는데, 엄마의 사랑이 빨간 색인 것인지 엄마의 화냄이 빨간색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둘 다 인 것 같아요. 엄마가 빨간색이면 대부분 아빠는 파란색이라고 말하더군요. 다음 주에는 5세 반을 대상으로 '감정 수업'을 하려고 합니다. 5세는 아직 붓을 다루는 것이 서툴러서 손가락을 활용해서 채색하려고 합니다. 손가락으로 그리는 그림은 어떤 모습일지 너무 궁금합니다. 다음 주 순수함 그 자체의 5세 아이들이 창조해 낼 '가족 감정 볼'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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