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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구례군에서 다시 만난 겸재 정선

2024년 8월 초순 저의 휴가는 경상남도 하동군을 거쳐 전라남도 땅끝마을까지 이동하는 코스였습니다. 우선 그 무엇보다 하동군에 위치한 최참판댁에 너무나 가보고 싶었습니다.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의 배경이 된 하동의 평사리를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휴가지로 향하는 첫출발은 무난해 보였습니다. 늘 길이 막히는 서울 금천구 구간을 벗어나자 차가 좀 달리나 싶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아, 아이들과 함께 가는 휴가인데 비가 오다니...' 싶었지만 저는 워낙에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기 때문에 오히려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비는 오다 그치다를 반복하더니 점점 거센 물줄기를 하늘에서 뿜어내기 시작했습니다. '후두두두' 내리는 빗 속에서 전라남도 구례군에 도착했습니다. 구례군에 도착하자 지금까지 지나온 지방과는 다른 아주 멋진 풍경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리산의 깊고 굵은 산세와 그 사이를 유유자적하게 흐르는 섬진강을 마주하게 된 것이지요. 폭우로 인해 섬진강의 물은 불어났고 한강과는 다르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섬진강은 산과 산 사이를 굽이굽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한강은 양 옆에 고수부지로 개발되어 반듯하게 정비된 도심의 강이 어떠한 모습인지 잘 보여주지만 섬진강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한강에 익숙한 저는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폭우로 변신한 비는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습니다.


비가 잠시 멈춘 지리산의 산세를 보니 정말이지 갑작스럽게 잊고 있었던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머릿속에서 떠올랐습니다. 지리산의 둥글면서 깊은 산세가 인왕제색도의 산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인왕산과 지리산은 지리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두 산입니다. 다만 동일한 점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산이라는 점이지요. 겸재 정선은 진경산수화라는 장르를 한국 회화사에 뿌리 깊게 내린 문인화가입니다. 정선 이전의 산수화는 관념산수화적인 측면이 강했습니다. 관념산수화란 이상적인 풍경을 화폭에 옮긴 것으로 대게는 중국회화에 등장한 이상향을 그린 것입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도 관념산수화의 좋은 예입니다. 몽유도원도의 경우 안평대군의 꿈을 안견이 3일 만에 그린 작품으로 복사꽃이 만개한 아름다운 풍경화입니다.


안견, 몽유도원도, 세종 28년 1447, 38.6 x 106.2 cm, 일본 텐리대학교 소장


보통 두루마리 형식의 회화는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왼쪽으로 시선을 이동하며 그림을 읽어가지만 몽유도원도의 경우에는 왼쪽에서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읽어갑니다. 오른쪽 하단에는 안견의 사인이 있으며 그 위로는 복사꽃이 만개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복사꽃이 펼쳐진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실제 풍경이 아닌 상상의 공간인 것이죠. 독자 여러분은 몽유도원도와 같은 풍경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러나 겸재 정선은 그가 직접 눈으로 본 대한민국의 산천을 그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등성이가 완만한 대한민국의 산을 화폭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겸재 정선, 인왕제색도, 1751년, 79.2 x 138.2, 국립중앙박물관



그렇다면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두 번째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인왕제색도에 등장한 인왕산을 실제로 보신 적이 있나요?



경복궁 쪽에서 바라본 인왕산


아마도 인왕제색도에 나온 인왕산의 모습은 경복궁 쪽 혹은 청와대 쪽에서 보신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산은 기본적으로 소나무와 바위로 형성된 완만한 곡선을 보여줍니다. 정선이 대한민국 실제의 풍경을 그렸기에 전라남도 구례군의 지리산을 보고 인왕제색도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국 회화 작품으로 리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가 삼성 이건희 회장의 별세 후 국립중앙박물관에 이건희 컬렉션으로 기증되었습니다.


전라남도 구례군의 지리산과 섬진강을 보니 머릿속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천천히 써보고자 합니다. 저는 대학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하는 바람에 한국 회화사는 학부 시절에 한 학기 간 수업을 들은 것이 전부입니다. 겸재 정선에 대해서는 아마 1시간 정도 수업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간을 들여 겸재 정선에 대해서 조사하고 제 나름의 연구를 하면서 매주 1편씩' Weekly 겸재정선 브런치북'을 펴내려고 합니다. 전통문화와 한국 회화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에게도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도 40대가 되어 나이가 드니 알록달록한 거대한 스케일의 서양화보다 수묵으로 그려진 한국 회화를 감상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음이 편해집니다. 시각적으로 화려하지 않아도 한 폭의 두루마리 혹은 화선지에 주제가 되는 모티브들을 담담히 그려나간 한국 회화가 가진 참맛을 이제서야 알아가나 봅니다. 다음 주에는 우리가 잘 몰랐던 겸재 정선, 한 개인의 이야기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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