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로운 보물지도

왜 상서로운가?

<상서로운 보물지도>라는 제목의 시민참여예술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아이디어가 처음 탄생한 것은 작년 겨울 어느 날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저의 큰 아이와 함께 서울특별시 강서구에 위치한 '겸재정선미술관'에 방문했을 때입니다. 겸재 정선의 다양한 작품이 진품과 영인본으로 전시되어 있는 겸재정선미술관은 정선의 작품을 한눈에 다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공간입니다. 전시품과 전시에 관련된 텍스트를 읽는 도중 저의 눈길을 사로잡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겸재 정선이 약 5년간 양천현령으로 양천지역에서 근무하며 진경산수화 작업에 꽃을 피웠다는 부분입니다. 1740년 당시 65세였던 겸재 정선은 영조 16년 양천현령(종 5품)에 임명되었고 그는 양천현의 풍광이 아름답다고 기록에 남기면서 《경교명승첩》의 일부인 《양천십경첩》과 이와 별도로《양천팔경첩》을 완성했습니다. 《양천십경첩》의 경우, 양천현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을 가로형의 그림으로 담아내었고 《양천팔경첩》은 당시 양천현의 명소를 세로형의 풍경화로 제작한 그림첩입니다. 겸재 정선이 남긴 양천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어? 다음 프로젝트는 컨템퍼러리 한 진경산수화, 우리 동네 그리기로 하면 되겠는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겸재 정선의 눈에 비친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양천현은 지금도 수많은 나무를 가진 자연이 아름다운 장소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이 프로젝트를 절실히 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학군지' 양천구가 아닌 나의 '삶의 추억이 농축된 거주지'로 이 지역을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양천구는 목동이라는 세부 지역명으로 서울시의 유명한 학군지 중 하나입니다. 수많은 노란 버스와 크고 작은 다양한 학원이 만들어낸 학원 정글 속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사교육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처럼 이런 사교육 열풍에 참가하지 않은 소수의 학부모들이 살고 있기도 합니다. 입시로 점철되는 청소년기와 이 청소년을 키워내는 부모님들의 삶은 결코 녹녹지 않습니다. 무한경쟁으로 표현되는 입시는 지옥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필수관문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거대한 노란 버스의 행렬 속에 체육복을 입고 학원으로 등원하는 수백 명의 학생들을 볼 때마다 저도 이곳에서 지낸 저의 청소년기가 떠오릅니다. 저도 그런 대형학원을 4시부터 10시까지 다니는 학생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저는 특목고 시험을 대비하며 장시간 수업을 하던 대형학원을 다녔던 중학교 3학년을 저의 인생에서 가장 암울하고 불행했던 시기로 말하곤 합니다. 나의 개인적 목표가 부재한 상태로 입시를 위해 2-3년치 선행을 하던 그 시절은 딱딱한 학원의자 위에서 불편한 엉덩이와 폭풍흡입하던 과자로 인해 늘 뱃속이 부글부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그런 경험 가운데에서도 이 지역에서 크고 작은 추억들이 제 삶 속에서 뿌리 깊게 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추억의 장소를 되돌아보면 그곳은 집 근처의 크고 작은 공원들입니다. 학창 시절 특별한 소풍지였던 서울랜드와 롯데월드가 아닌 집 근처의 양천공원과 신트리공원은 선명하면서 흐릿한 점과 같은 추억들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제 마음속 깊은 사적의 공간이자 시민들과 함께 향유하는 공공장소이기도 합니다. 이 두 장소에서 무엇을 했느냐?를 스스로에게 질문했을 때 저의 답은 굉장히 단순했습니다.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을 했다. 부모님 혹은 친구와 짝이 되어 체육 수행평가를 연습했다. 친구들과 학원 끝나고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마시며 잠시 걸었다' 등 너무나 일상적인 것들이지만 지금의 제가 과거를 되돌아봤을 때 슬며시 미소 짓게 하는 일화들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도 두 공원에서 저희 아이들과 함께 소소하며 평범한 놀이를 하면서 저희 나름의 소중한 시간들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상서로운 보물지도>는 가족 단위의 참가자로 구성된 10개의 팀이 모여 자신의 추억의 장소를 한국화로 그리고 이에 관해 에세이를 작성하는 프로젝트입니다. 10개의 팀이 함께 한지 위에 그린 공동회화 작품은 병풍으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작년 <어느 특별한 예사로움> 프로젝트는 부모 1인과 아이 1인으로 구성된 참여자들이었다면 이번에는 부모 1인과 아이 1인 이외에도 시니어 참가자가 포함된 가족을 특별히 초대하려고 합니다. 시니어 부모님과 성인자녀로 구성된 팀과 조부모님과 손주로 구성된 팀을 초청하여 시니어 세대의 추억이 담긴 오래된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바쁜 삶을 살아오신 시니어분들과 함께 세월과 경험이 녹아나는 한국화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시민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머금은 작품들은 양천구 내 '양천중앙도서관'에서 2025년 10월에 전시할 계획입니다. 시민들의 작품을 시민들을 위한 공간에서 전시한다는 것도 저희의 기획의도와 잘 맞아 보입니다. 구글에 '상서롭다'의 뜻을 검색해 보니,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날 조짐이 있다'라고 답을 알려줍니다. 복되고 길한 일이 이미 일어나 버렸다면 이는 분명 과거형의 일인데, 조짐이 있다니 이는 분명 밝은 미래를 암시하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일상적이지만 밝은 미래를 꿈꾸는 자라나는 새싹들과 그 새싹들을 온 마음을 다해 양육하는 가정들이 모여 소중한 나와 너의 보물을 나눠 거대한 지형도로 제작하는 <상서로운 보물지도>의 시작에 많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