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그러나 뜻깊은 추억의 장소
오래간만에 쓰는 <상서로운 보물지도>의 연재글입니다. 어제 드디어 초등학교 1학년, 3학년 두 아이가 개학했습니다. 방학기간 동안 두 아이를 데리고 이런저런 체험과 교육을 받으러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방학기간을 보냈습니다.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자마자 저와 안 선생님은 <상서로운 보물지도> 프로젝트의 예행연습을 해보았습니다. 내일 (2025년 8월 23일) 오후에 양천생활문화센터 다목적실에서 진행할 워크숍 리허설 겸 우리는 어떤 상서로운 공간을 지역사회에 가지고 있나를 탐색해 보았습니다. 한국화용 화선지와 먹과 수채화 물감 그리고 붓을 세팅한 뒤 무엇을 그릴까 논의하던 안 선생님과 저는 모두 예사로운 장소를 선택했습니다. 예사롭지만 아마도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던 보물 같은 장소이겠지요. 안 선생님은 딸과 함께 아파트 단지 정원의 큰 나무 밑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을 꺼내 들더니 그 장면을 그리겠다고 했습니다. 마치 그림자처럼 그림 속에 음영으로만 등장한 안 선생님과 딸은 작품의 주연이지만 조연처럼 주변의 나무의 빛과 그림자와 어우러져 한 장의 그림으로 탄생했습니다.
저의 추억의 장소는 다름 아닌 저의 모교 '서울신서초등학교'였습니다. 모교라고 하면 초, 중, 고, 대학교 중 하나를 보통 선택하길 마련인데 성인이 된 이후에 모교를 고르라고 하면 보통 짜릿하고 재미난 기억이 많이 남는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많이 선택합니다. 그러나 제가 초등학교를 선택한 것에는 저만의 이유가 있습니다. 1995년 겨울, 목동아파트로 이사 온 저는 동생과 함께 서울신서초등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새로운 동네였습니다. 당시에는 쓸쓸하고 낯선 동네였지만 지금은 고향과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 한 동네에서 계속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생과 다녔던 초등학교는 늘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대학생과 직장인 시절을 거치면서 출퇴근 길에 초등학교를 지나가곤 했습니다. '학교는 늘 이 자리에 있네...'라는 생각을 하며 한 번씩 눈길을 주고 지나갔습니다.
그런 던 어느 날 저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아이들은 차례로 초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동생이 졸업한 바로 그 학교로요. 입학실 날 저도 모르게 따라 불렀던 교가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줄줄이 비엔나처럼 소환시켰습니다. 제가 많이 떠든다고 건의함에 쪽지를 써 놓았던 남학생(이 친구는 현재 저와 같은 건물 3층에 있습니다.)부터 떠들썩했던 운동회와 모두가 싫어했던 뙤약볕의 운동장 조회 시간 등.... 잊혀 있었던 기억들이 같은 공간에 다시 들어오니 새록새록 생각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 학교를 처음 만났던 저는 2025년, 30년이 지나 학부모로 학교를 매일 찾아갑니다. 둘째가 아직 1학년이기 때문에 등하교를 저와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죠.
30년이 지나는 동안 학교는 많은 모습이 변화했습니다. 우선 작년까지는 제가 다닐 때 쓰던 창문을 그대로 썼지만 겨울 방학에 대대적으로 샷시를 하얀색으로 바뀌면서 시각적으로 건물의 컬러가 확 바뀌었고 체육관 건물도 지난 세월동안 신설되어 운동장이 제가 다닐 때보다 좁아졌습니다. 그러나 바뀌지 않은 하나의 디테일이 있습니다! 바로, 왠지 이건 아마 저만 알고 있는 디테일 같은데 제가 학교를 다니던 시기 중앙 현관에 장식되어 있었던 유물들이 아직도 신관의 로비에서 전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30년간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 학교이기에 이 유물들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잘 없을 것 같습니다. 두 아이의 방과 후 교실 공개 수업 때 우연히 저와 다시 마주한 오래된 유물들은 입학식 이후 다시 한번 저를 30년 전으로 돌려보내주었습니다. 문화재가 되기엔 너무 단출한 식기와 생활도구 유물들은 30년 동안 아무 말 없이 서울신서초등학교의 한편에서 세월을 쌓아왔나 봅니다.
보물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겐 매우 특별한 말 그대로 보석일 수도 있고 저와 안 선생님처럼 소박하지만 자신만의 마음속에서 반짝이는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드디어 내일 만나게 될 <상서로운 보물지도> 프로젝트의 참여자들 마음속에 있는 보물들은 어떤 장소일지 궁금합니다. 같은 동네에 살지만 각기 다른 이야기를 써가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내일 프로젝트 워크숍을 잘 진행하고 작품과 함께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한국화로 풀어낸 상서로운 보물지도'에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