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지역에서 예술활동을 한 지 2년이 되어 갑니다. 기존의 저의 예술활동은 대형전시 및 대기업 스폰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기획자로 어떻게 보면 상업적인 활동이 위주였습니다. 양천문화재단의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전시기획사를 퇴사하고 두 아이를 키우는 것에 좀 더 집중하면서 이루어진 행보였습니다. 주거지를 퇴근 후 잠을 자는 베드타운으로 바라보다가 여기에서 좀 더 밀접하게 활동을 하면서 생겨난 일이었습니다.
처음 지자체 예술 활동을 기획할 때 든 생각과 의구심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이렇습니다. "과연 이게 제대로 될까?" 해외 미술관 및 이미 유명해진 아티스트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일했던 제가 시민참여예술프로젝트의 기획자로서 시민들과 예술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든 걱정을 한 마디로 함축한다면 바로 저 질문이 될 것입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시민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이를 전시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모험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림이 어떻게 그려질지 모르니까요.
2년째 시민들과 함께 작품을 창작하고 이를 전시를 하는 과정을 지나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우리 모두 예술가라는 점입니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예술가이다.'라는 말은 다들 익히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창의적이고 편견이 없고 표현적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한 작품활동들은 마치 유명한 예술가가 작업한 것처럼 강렬하고 추상적인 형태가 살아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반면 어른들의 작품은 어떨까요? 보통 어른들이 미술 수업을 들으면 강사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형태와 색감을 표현하고 작품을 완성하기에 어떠한 틀에 갇혀있다는 인상을 받기 쉽습니다. 마치 기성품의 옷을 보는 것처럼요. 그러나 강사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없이 '느낌을 표현해 보세요.' 혹은 '인상 깊었던 일을 자유롭게 그려보세요.'라고 큰 주제만 던져진 경우 어른들도 어린이 못지않게 자유로운 표현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지난 2년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깨달았습니다.
작년에 <어느 특별한 예사로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우리 모두에게는 추상표현주의자의 본능이 숨겨져 있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대담한 색채구성과 과감한 구도를 설정해 가며 거대한 캔버스에 자신의 감정을 빼곡히 채워가는 참여자들을 보면서 위와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이죠. 그리고 가슴 한편에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올해 운 좋게 예술활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런 좋은 작품이 나왔나 보다.' 이번 해 <상서로운 보물지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참여자들이 한 가장 자주 한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선생님, 아무래도 망한 것 같아요."
한국화라는 장르가 낯설기도 하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 그림을 그린 분들이 다수 인지라 한지 위에 먹물로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 작업을 마치고 공동 회화 작업을 진행할 때는 어느덧 능숙하게 먹을 자유자재로 활용은 참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굵은 붓을 활용하여 일필휘지로 볼드한 곡선을 그려나가는 것입니다. 한국인의 타고난 능력인지 혹은 그간 30분가량의 개인 작업을 통한 학습인지, 참가자들은 어느덧 자유자재로 붓을 놀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관찰하면서 뿌듯함과 동시에 놀라움을 느낍니다. 그림과 상관없이 수십 년의 인생을 살아왔지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해서 창작활동을 하는 개인이 보여주는 능력은 괄목할만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제가 2년간 양천구에서 예술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지역 주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삶을 나누며 예술활동을 하는 과정은 개인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주민과 견고한 공감대를 형성한다.'입니다. 일상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이를 함축적으로 글로 나타내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짧은 문장과 약간은 어설픈 우리의 그림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지역에서 예술활동을 하는 것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있게 마음을 나누는 것에 있어서는 그 어떠한 활동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조약돌을 던졌을 때 그 파동이 한동안 오래가는 것처럼 평범한 일상을 기반으로 그려진 그림이 주는 잔상이 오래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