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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의 남자 Apr 12. 2023

히노데 소바 in 삿포로

먹는자의 기억법 #15

4월 초 삿포로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고개를 내밀었다 집어넣으며 밀당하는 해, 번갈아 쏟아지는 비와 눈, 언제 어디서든 갑자기 날아드는 세찬 바람. 잦은 날씨 변화에 따라 덩달아 기분이 널뛰며 자연스레 쌓이는 심신의 피로.


그렇게 옷깃을 여미고 스스키노 인근 오도리역 지하상가를 배회하던 어느 오후, 어디선가 풍겨오며 나를 끌어당기는 짭조름한 내음이 있었다. 진원지는 아주 예전에 한국에도 꽤나 많았던, 기차역사 모퉁이 한 구석에 자리 잡고 간단한 국수를 내는 자그마한 가게.


아직도 이런 곳이 있나 하는 반가움에 다가가보니 두어 평 남짓 돼 보이는 공간에서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들이 소바를 만드는 정겨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빼곡하게 줄지어 서서 젓가락질에 여념이 없는 현지인들. 망설일 것도 없이 대열에 합류했다.


주문하는 데 30초, 소바가 나오는 데 30초. 뚝배기에 담은 것도 아닌데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는 국물에서는 깊고 차가운 바다의 풍미가, 고운 메밀 반죽의 면과 아삭한 파가 어우러진 식감에서는 단단한 대지의 푸근함이 풍겨 온다.(ㅇㅇ오바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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