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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의 남자 Apr 12. 2023

마루야마 교수 in 삿포로

먹는자의 기억법 #14

카레는 그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무척이나 강한 음식 중 하나다. 양이니 닭이니 돼지니 혹은 비건이니 하는 부가적인 재료들에 따른 배리에이션이 꽤나 존재하지만 이들의 존재감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허나 이같이 확고한 경험칙을 비웃는 돌연변이들이 드물지만 존재한다. 스스로를 교수라 일컫는 이곳 주인장의 카레가 바로 그렇다.

적당한 입자로 갈려 들어가 있는 새우와 조개와 굴이 뿜어내는 초식은 일말의 군더더기 없는 크리티컬을 자랑한다. 어느새 카레의 주도권은 온 데 간 데 없다. 갖가지 재료들을 발밑에 두고 호령하는 다른 카레들과 달리 이곳의 카레는 몰락해버린 구한말 양반들마냥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한다.

예상을 산산이 부수는 유쾌한 반란은 스스로의 일천한 미식 공력을 자각하고 다시금 반성의 자세를 다잡는 계기가 된다. 이렇듯 대관절 학습하게 되는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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