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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의 남자 Oct 06. 2021

서울 신사동 한성돈까스

먹는자의 기억법 #2


모름지기 돈까스는 크게  가지로 나뉜다. 소스에 흥건하게 적셔진 조선식이  하나, 그리고 바삭함이 특징인 일본식이 나머지 하나다.(원조라 일컫는 커틀렛 따위는 반도에서 극히 낮은 점유율을 가진 관계로 생략한다)

개인적으로 전자를 훨씬 선호한다. 달큼하고 온기 어린 소스를 만나 한껏 부드러워진 튀김옷을 지나면 얇지만 옹골찬 밀도의 패티와 조우할 수 있다. 때로는 마감에 치이고 치여 피곤에 쩌든 내 신세와 묘하게 오버랩이 되곤 하는 갬성적 이유 또한 없지 않다 할 수 있겠다.

반면 바삭함을 강조하다 못해 날선 튀김꽃이 마구 날뛰는 일본식 돈까스는 여러 모로 별로다. 두툼한 고기를 씹는 느낌은 잠시나마 나를 부르주아 계층 어딘가로 인도하는 것 같지만, 이내 헐어버린 입천장이 나의 본래 위치를 각인시킨다. 식후 평소 루틴처럼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머금는 순간 야속하게도 그 같은 심증은 확증으로 돌변한다.

그럼에도 이곳의 돈까스는 특별하다. 앞서 열거한 온갖 단점들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으면서도 이를 단번에 상쇄할 식감을 보유해서다. 그간 튀김옷에만 머물러온 편협한 생각의 사유에 단호한 일침을 가하는 대단한 육질. 대관절 이렇게 일순간 찾아드는 겸허함이라니.

메인인 돈까스와 나머지 조연들의 조합은 훌륭한 로테이션을 구축한다. 윤기 가득한 밥 한 술에 큼직한 돈까스 한 점, 그리고 잘 익은 깍두기 한 조각이 입안에서 어우러질 때 폭발하는 감칠맛은 단전 깊숙한 곳까지 울림이 가 닿는다. 이 같은 놀라움을 재차 삼차 느낄 수 있게끔 리프레쉬의 역할을 맡은 건 팽이버섯이 동동 뜬 미소된장국이다.

분명 기름진 음식임에도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거부감은 또 다른 미덕인 동시에 살찔 걱정마저 잠재운다. 걱정의 40%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이며, 20%는 사소한 고민, 10%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데 그저 마음 편히 30%에 속하고 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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