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로드 미식열전(上) in 상하이-자싱-항저우-난징

먹는자의 기억법 #20

by 모래의 남자

<임시정부 그들의 시간을 걷다> 연재를 마친 지 열흘이 흘렀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앞으로는 두쫀쿠 같은 말랑말랑한 글을 써보겠노라고 호기롭게 선언했습니다만, 당최 글감이 떠오르질 않아 밤낮으로 공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 뭡니까. 연재를 끝내자마자 무직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작가님들의 글에 호시탐탐 아무 말 뻘소리 댓글이라도 남기려 흘끔대고 있었는데 요즘 날이 추워서 그런가 다들 잠잠하시더라고요. 아니 그리고 예전에는 고작 며칠만 지나도 브런치에서 뭘 그렇게나 징징대고 질척이는-“작가님의 글을 본 지가 너무 오래됐어요ㅠㅠ 연재는 독자들과의 약속입니다!” 따위의-경고 알림이 날아들던 기억이 나는데, 요즘엔 그런 것도 없나봐요? 이제 좀 쉬라는 나름의 배려 같은 것일 리는 만무할 텐데. 흠. 아무튼 그래서 하릴없이 휴대폰 갤러리를 넘겨보다가 중국에서 주워먹고 다녔던 것들이 눈에 들어와 간단히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괜히 독립운동가들 감정선 운운하며 코스프레 한답시고 싸구려 음식만 먹고 다니느라 그다지 미식적인 여정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냥 쓸모 없는 기록을 남기는 쓸데 없는 의지 같은 것이라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애초에 이 글에서 교훈 같은 걸 기대하신 분이 있다면 그건 서로의 불찰입니다.




동타이샹(东泰祥) in 상하이

상하이를 대표하는 만두, ‘셩지엔 바오(生煎包)’를 내는 집입니다. 동그랗게 빚은 만두를 원형 팬에 촘촘하게 담고 기름에 반쯤 잠기게 한 뒤 뚜껑을 덮어 눌러서 가열합니다. 자연스럽게 아랫부분은 튀겨지고 윗부분은 쪄지게 되죠. 겉바속촉 아니고 아바위촉 정도의 하이브리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본적으로 고기만두지만 새우 등등 몇몇 배리에이션이 존재합니다.

20년 전 상하이에 처음 갔을 적에 맛보고는 감탄에 감탄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협소하기 이를 데 없던 저의 만두 세계관을 단숨에 확장시켜 준 고마운 이 녀석. 그 뒤로는 상하이를 방문할 적마다 찾아먹곤 했어요. 사실 상하이 길거리에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음식이지만, 저의 첫 경험이 이 집이었던지라 유독 애착이 갑니다(뻐꾸기 새끼 같은 기질이 좀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상하이 전역에 지점도 엄청 많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음식도 추억도 프랜차이즈가 되나 봅니다. 한국에서 찾아보니 이 만두를 내는 곳이 인천 차이나타운에 한 곳 있고, 그리고 최근엔 홍대 쪽에 한두 곳 생겼더라고요?


지아지아탕바오(佳家汤包) in 상하이

상하이는 원래 털게가 유명합니다. 교환학생 시절에 어학공부를 빙자해 중국 TV를 열심히 봤는데, 베이징 남자와 상하이 여자의 러브스토리를 다룬 매우 유치했던 드라마 기억이 납니다. 이들에 비하면 우리나라 영호남 지역감정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라서 막장으로 치닫는 전개가 아주 흥미진진했습니다. 서로를 무시하는 양가 집안의 줄다리기로 인해 두 도시에서 차례로 상견례를 가지는데, 베이징에서는 오리구이를 통으로 턱 하니 내놓고 상하이에서는 털게로 응수합니다. 대범함을 미덕으로 삼는 베이징 사람들은 털게를 바르며 깨작대다가 결국 성질을 못 참고 젓가락을 내던지고 말죠. 아마도 순간 시청률이 최고조가 아니었을까 하는 억측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아무튼 이 집의 게살국수는 털게의 녹진한 내장을 기름과 두반장에 졸여내고 거기에 전분 약간 얹은 느낌입니다. 면은 중국 면 특유의 뚝뚝 끊어지는 재질이고, 다소 느끼하긴 하나 짠맛과 비린 맛이 그리 두드러지진 않습니다. 소스와 면이 섞이지 않고 따로 노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어울리긴 합니다. 예상 가능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 그 어딘가 쯤에 걸쳐 있는 그런 맛이랄까요. 정리하자면 맛있는데 설명하기 좀 귀찮은 맛입니다. 다만 가격이 중국 치고는 상당합니다. 한 그릇에 89위안이니 오늘 환율로 1만9000원 가까이하네요. 저 때 묵은 호텔이 88위안이었는데. 저의 한 몸 뉘일 비용보다 비싼 이 음식 앞에서 잠시 삶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아무 의미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소고기 우육면 in 자싱

김구 피난처가 있는 자싱 인근 하이닝 어느 시장통에서 발견한 우육면입니다. 사실 중국에서 우육면은 한국의 짜장면 포지션이라 어딜 가나 발견할 수 있고, 심지어 메뉴판에 없어도 “니우로우미엔?” 하고 물으면 대개 고개를 끄덕입니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많이 팔리는 컵라면 역시 우육면 맛이에요.

중국은 우리와 달리 국물을 그리 즐기는 문화가 아니라서 우육면의 국물은 면을 떠받치는 역할에 머뭅니다. 일본의 라멘처럼요. 물론 우리는 맛있게 먹지만. 어쨌든 특유의 향신료 내음이 과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서 저는 국물 없이 주문하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완전 볶음면은 아니고 비냉에 육수 조금 더 부은 느낌에 가깝습니다. 국물이 적지만 오히려 소고기 육향은 더 올라와서 만족스럽더라고요. 물론 늘 그렇듯 만족의 기준 중 중요한 것은 배탈만 안 나면 성공이지만.


간판 없는 집 정체 모를 면&만두 in 항저우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 인근에서 찾은 낡은 로컬식당입니다. 간판은 없고, 손님은 많고, 메뉴 설명은 없습니다. 이런 집은 대체로 둘 중 하나입니다. 아주 맛있거나, 아주 위험하거나. 비빔면은 질깃한 중면에 시큼하고 달큼하며 짭짤한 간장 소스를 붓고, 짜사이와 쪽파 다진 것을 올려줍니다. 입구에서 주문을 마치고 걸어가 테이블에 앉으면 거의 동시에 음식이 당도합니다. 중국에는 길거리 식당들 대상으로 빨리 만들기 대회라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의외로 간이 그리 세지 않고 온기도 적당해서 쿨타임 없이 술술 들어갑니다. 만두는 고기만두인데 이 역시 과거에 많이 경험했던 ‘양은 적고 염도는 높은’ 중국만두 특유의 소가 아니라 호빵 수준의 양에 짠맛도 적당합니다. 이후 접했던 면류들과 종합해 판단하면 이제 중국도 과한 염도를 슬슬 멀리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위생은 크게 기대하긴 어렵지만 맛과 가격이 이를 충분히 상쇄하는 느낌입니다. 면 9위안(1900원), 만두 각 2위안(420원).


마라탕 in 난징

칼칼한 마라탕 역시 중국에서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난이도는 낮지만 의외로 취향을 찾기까지 오래 걸리는 음식입니다. 넣을 수 있는 식재료와 향신료들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입맛에 들어맞는 조합을 완성하려면 많은 실패가 요구됩니다. 누군가에게 잘 맞는 재료가 내 입에는 지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추천을 믿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교환학생이던 시절에는 밥보다 더 자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가난한 유학생에게 그보다 뜨끈하고 든든한 한 끼는 찾기 어려웠거든요. 당시에는 돈 걱정에 집어 들지 못했던 갖가지 토핑들을 양껏 담으니 이제는 꽤 가격이 나가는 식사가 됐네요. 그럼에도 맛이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의 이유는,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모 한식당 in 난징

그렇습니다. 열흘 정도면 오래 참은 겁니다. 사실 국밥에 소주는 중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머리를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과거에 유럽을 몇 달씩 누빌 때는 한식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역시나 세월과 나이란 참 무섭습니다. 그간 그렇게 어른들을 비웃었던 제가 부끄럽고, 깊이 반성합니다.

다만 그런 날이기도 했습니다. 숨 쉬기조차 버거웠던 리지샹 위안소와 폐허나 다름없던 조선혁명간부학교 터를 다녀온 뒤라 그런지, 모종의 응어리를 풀만한 무언가가 필요했거든요. 늘 그런 핑계로 과음을 하긴 하지만 이날은 조금 더 절실했습니다. 역시 국밥은 국밥입니다. 만약 미국에 국밥이 있었더라면 조커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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