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안에서

일상에세이 39편

by forcalmness

서울 출장을 다녀왔다. 서울을 떠나 산 지 8년이 되어간다. 그래서인지 서울에 가면 번잡함에 매번 혀를 내두르면서도 가끔 느끼는 혼잡함을 즐기게 된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이 밀집한 공간에 잠시 놓이는 경험은 가끔이면 꽤 괜찮은 느낌이다. 무선 이어폰만 꽂으면 노래에 사람들의 소리가 무음처리되고, 많은 사람들이 배경이 되어 내 주변으로 지나간다. 백색소음이 아니라 백색배경이 된다.



서울 출장을 가면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기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기차 안은 아주 안락하고 포근하다.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기차가 향하는 방향으로 앉아있다. 내게 향하는 시선은 거의 없다. 물론 역방향 좌석이나 4인석처럼 마주보는 자리가 있긴 하지만. 난 오로지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풍경만 가끔 바라본다. 이번 서울출장 기차는 운이 더 좋았다. 올라가는 기차 안에선 옆자리가 비었으니까.



서울역까지 가는 한시간 남짓, 기차 안에서 내가 찾은 최적의 일은 노래 들으며 에세이 쓰기다. 책을 읽어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꿀렁거려 책에서 초점이 자꾸 벗어나고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집에서 캡슐커피머신으로 내린 뜨끈한 커피를 슬링백 안에 쏙 들어가는 작은 텀블러에 담아와 홀짝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핸드폰으로 에세이를 쓰다가 가끔 이어지지 않을 땐 움직이는 기차를 느끼며 스치는 바깥풍경을 응시한다.



내게 기차는 움직이는 카페와 같다. 그것도 바깥풍경이 절로 변하는 멋진 카페. 신기하게 주변이 끊임없이 변화할 때 오히려 내가 가만히 멈춰있는 게 잘 느껴진다. 온전히 내면의 소리에 침잠할 수 있는 시간으로 변모한다. '열차를 타는 시간은 책 한권을 읽기에 최적이다'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유명한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물론 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앞부분만 읽었지만 그 의미는 충분히.



이번 서울출장 기차 안에서 에세이 세편을 완성했다. 이정도면 글쓰기에 최적화된 몰입의 공간이 내겐 기차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기차 안에선 최상의 몰입이 가능해진다. 고요함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공간. 가끔 들리는 아이의 투정소리 정도는 무선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로 충분히 덮인다. 기차를 타고 움직이는 여행을 계획해볼까. 글도 왕창 쓰고 여행도 하는, 나 여행작가가 천직일수도. 오늘도 이렇게 새로운 꿈과 즐거운 상상, 그리고 세편의 에세이라는 수확까지 기차 안에서 획득했다. 나이들어 해외에 가면 멋진 고속열차들을 많이 타야지란 결심도 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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