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44편
내가 지닌 것 중 가장 귀한 걸 고른다면 난 두 가지, '마음'과 '시간'을 고르겠다. 살면서 점점 모든 것엔 총량이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짙어진다. 어떤 한정된 크기가 있다는 생각. 그건 꼭 한 사람의 역량에 달린 게 아닌, 절대값 같다는. 사람마다 시기의 차이가 있어 마음과 시간의 그래프 곡선들은 달라도 전체를 합하면 누구든 총량은 같을 거라는 조금은 기이한 상상을 요즘 하고 있다.
그 상상이 내면의 밑바탕이 되어버린건지 요즘은 선약을 먼저 조급히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예전엔 같은 팀 사람이라서, 조금 궁금해지는 사람이라서 점심 약속을 선뜻 잡아 밥을 함께 먹곤 했다. 그게 새로운 즐거움이기도 했다. 모르던 사람이었는데 오 이런 면이 있네, 나와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의외로 대화가 잘 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이런 기회들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요즘도 그 생각 자체가 변한 건 아니다. 그런 기회가 생기면 내 마음이 가는 선에서 점심을 함께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새로운 기회를 스스로 직접 만드는 것 자체에 소극적으로 변했다. 구지 또 새로운 인연에 연연하며 시간과 마음을 소모하는 일보다 그 시간에 내 내면을 다지며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데 마음이 기운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먹으러 나가고 조용해진 공간에서 준비해간 간단한 점심을 편안히 먹고, 오늘은 무엇에 내 마음과 시간을 내어줄까 천천히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대체로 내 마음이 들려주는 건 노래를 들으며 도서관 혹은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처럼 내면의 이야기를 글로 쏟아내자는 외침, 내일이나 모레 즈음엔 신랑과 맛있는 걸 먹고 가벼운 산책을 겸한 점심 데이트를 하자는 속삭임, 아이가 요청한 로봇 색칠놀이 도안을 출력해서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다짐, 함께 있으면 편안한 몇 안되는 사람들에게 다음주 중에는 한번 안부차 연락을 해보자는 결심 등이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즐거워하는 것들에 내가 가진 가장 귀한 시간과 마음을 쓰려는 내면의 소리가 요즘 내 마음 속에 잔잔히 퍼지고 있다. 절대적 총량을 우선순위에 맞게 적절하고도 미세하게 배분하는 일에 신중을 기하는 중이라고 할까. 새로운 기회보다는 지금까지 쏟은 시간과 내어준 마음 속에서 건진, 날 편안하게 해주는 좋은 사람들에게 내 시간과 마음을 더 건네는 걸 선택했다.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던 걸 기억한다. 함께 점심을 먹고선 오늘 만난 소회로 보낸 메시지 중 한 구절이 '시간 내어줘서 고맙다'였다. 그런 소중한 말을 건네주는 사람들에게 내 한정된 시간과 마음을 쓰는 게 앞으로 내가 가고픈 방향이라는 생각을 한다. 시간과 마음을 쓰는 기준이 분명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아이가 내가 좋아하는 커피와 과일을 그린 그림을 선물하는 마음처럼. 아이가 신랑에게 아빠가 좋아하는 우유 그림을 전하기 위해 들인 시간처럼. 간결하고 명확한 그 마음과 시간처럼, 온전히 좋아하는 사람과 즐거운 기쁨 안에 쏟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