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 30편
아이와 지내면서 속으로 놀라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가 너무 잘 기억하고 있어서. 아이의 머릿속은 백지였다 이제 하나씩 채워지고 있어서일까. 기억이 섬세하다. 그저 지나친 줄 알았는데 엄마아빠가 기억하고 잘 약속을 지키나 기다려주다가 은근슬쩍 말을 내미는 것 같을 때도 있다.
오늘 아침엔 좋아하는 카봇 영상을 보다가 "어린이집 갈 시간이야." 하는 내 말에 갑자기 이런 말을 건네는 것이다. "카봇 케이크 사먹기로 했잖아. 스타 가디언 그려진 거. 다음주에 사러 갈까? 스타 가디언 없으면 다른 카봇 그려진 걸로."
뜬금없지만 아 그때 그 얘기구나, 짐작하면서 물으면 그 예전 얘기가 진짜 맞다. 말을 안할 수도 없고 그때그때 다 들어줄 수도 없으니 살짝 시기를 유예하는 방식을 사용했던 때가 잘 먹힐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 방어율이 반의반으로 줄어든 느낌이다. 사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뭔가 불리할 때 예전일을 기억했다가 불리한 일을 덮을 작정으로 예전 일을 꺼내는 것. 스리슬쩍 지금의 상황을 모면하려 돌림수를 쓰는 느낌. 그 느낌이 아이에게도 느껴진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아이가 많이도 성장했다. 사람의 마음을 잘 읽고 눈치가 생긴 듯해서 가끔은 마음이 찡할 때도 있다. 최근에 감정사전이라는 걸 어린이집에서 만들어왔는데, 자신이 언제 어떤 감정이 드는지 간단한 그림에 설명을 붙인 작은 종이책이었다. "엄마가 장난감을 빼앗아갈 때 화나요.", "아빠가 때릴 때 슬퍼요."라고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나도 뜨끔, 신랑도 뜨끔했을 것이다.
난 어질러진 걸 바로 좀 치우는 편이라 아이 장난감을 아이 허락없이 치울 때도 있다. 게다가 난 관심이 일도 없는 로봇을 차로 변신하는 걸 도와달라는 요청을 아이가 할 때, 로봇 관절을 꺾는 게 너무 손이 아파서 유난히 잘 안 되는 로봇을 아이 손에서 가져가서 다른 곳으로 치워버린 적도 있었다. 그때를 기억하고 그렇게 적은 것이 분명했다. 신랑은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도 아이가 듣지 않는 걸 싫어해서 몇 번 얘기해도 듣지 않으면 화가 나서 살짝씩 아이에게 때찌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적은 것이다. 그런데 아빠에겐 그 부분만 빼고 아이가 읽어주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사실 적잖이 속으로 놀랐다. 아빠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면 아빠가 상처받을까봐 그랬을까.
아이의 기억 속에 우린 어떤 다양한 모습으로 저장되어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평상시엔 상냥한데 갑자기 퉁명해지는 지킬앤하이드 같은 이중인격으로 크게 각인되진 않으면 좋으련만. 아이가 순간순간 들려주는 이야기를 고맙게 생각하고 반응해 주면서 같이 웃는 게 좋은데. 그게 매번 잘 되지는 않는다. 아이가 가끔 내 이야기에 별 반응없이 퉁명스러울 때 속상한 마음을 감추고 날 돌아본다. 내 모습이 아이에게 보이는구나 싶어서. 아이에게 엄마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즐겁고 재밌는 시간으로 더 기억될 수 있도록 좀 더 긴장해야겠다. 곧 친구들이 더 좋아지는 시기에 완전 토사구팽 당하지 않으려면. 오늘은 내 마음 속에서 이런 말이 들린다. '아이는 우리가 한 일을 다 기억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