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34편
책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추천받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사두고 이제야 집어들었다. 얇디얇은 책이라 덜컥 샀는데, 배경이 겨울이라 여름엔 왠지 읽고싶지 않아서 묵혀두고 이제야 다시 꺼내들었다. 책도 계절과 분위기를 타면서 읽어야 즐겁다.
사실 영화<인셉션>에서 인상깊게 봤던 배우 킬리언 머피가 주연한 영화로 제작된 걸 알고 있었고, 언젠가 라디오에서 이 영화를 소개하는 것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기대가 되는 책이어서 시간을 내어 쭈욱 읽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상하게 엉킨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템포를 조절하며 쉬어가고플 때 한권의 책을 차분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시기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빌 펄롱이라는 주인공이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빈손으로 살아내며 아일린과 결혼하고 다섯 딸들을 키우는 마음과 태도를 따라가는 초반의 글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운이 나빠서 힘들게 지낼 수 있다는 삶에 대한 태생적 이해, 언제든 한순간에 다 잃을 수 있다는 걸 항상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마음의 서술들이 펄롱이라는 주인공에 몰입하게 했다. 성실하고 잔잔하지만 어딘가 두려움과 불안함을 내재한 그의 마음이 자꾸 생각났다.
크리스마스에 아빠 혹은 원하는 선물을 가지고 싶다고 정성껏 편지를 써도 아빠나 산타가 오지 않아 스스로가 하찮은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외양간에 가서 울었던 어린 펄롱이, 아빠가 되어 딸들에게 "아빠에게도 산타가 왔었어?" 되물음을 받는 순간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내 아일린과 아이들이 산타에게 쓴 편지를 함께 보며 "그래도 애들이 별이랑 달이랑 달라고 하지 않는 게 기특하지 않아?"란 대화에선 웃음이 터져나왔다. 부모로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과 겹쳐져서. 이렇게 슬픔과 웃음이 교차하는 글에 빠져들어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감정선이 잔잔한 폭풍 같다고 느꼈다.
"아무튼 우리는 괜찮지?"라고 아내 아일린에게 묻는 펄롱의 질문에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자신이, 우리가 잘 지내고 있는 게 맞는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확인받고 싶은 마음, 피어오르는 의구심을 대변하는 그 말. 살면서 매번 따라다니는 궁극의 물음표. 그 물음이 소설 속 장면에 너무나 잘 녹아있어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이 장면을 영화에서 어떻게 녹여냈을지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영화 <타인의 삶>과 비슷한 느낌일까. 타인의 삶을 도청기로 엿들으면서 그들의 삶에 깊숙이 빠져들어 결국엔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과 변화를 그리는 영화로 읽혔는데. 클레어 키건의 단편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그와 비슷한 내면의 내레이션이면서도 보다 더 자기완결적으로 느껴졌다. 타인의 삶을 자신의 세계로 끌어오는 게 영화 <타인의 삶>이라면, 자신의 삶에서부터 시작해 외부의 세계를 끌어와 확장시키는 게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결말처럼 읽혔다.
오랫동안 빌 펄롱이 마음 속에 그려온 '농장이 그려진 500피스짜리 지그소'가 어떤 상징처럼 내 가슴에 박혀 있을 것 같다.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클 수도 있다는 것'을 되새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