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 33
주말 오랜만에 긴 낮잠을 달게 자고 일어나, 아이에게 문방구에 가지 않을래 물었다. 잘 쓰는 스카치테이프가 똑 떨어진 뒤 자꾸 찾았기에 슬슬 문방구 산책을 다녀올까 생각했던 거다. 아이의 장난감 공간에 최근 다양한 필기구, 문구용품들이 추가되고 있다. 연필깎이, 연필, 네임펜, 보드마카, 색연필, 지우개, 수정화이트, 복사용지, 반짝이 색종이 등등.
요즘 아이는 한마디로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원래 어릴 때부터 영유아검진을 하면 대근육보다 소근육 발달이 빠른 아이였는데 그게 이렇게 빛을 발할지 그땐 몰랐다. 거실 한가운데에 아이용 낮은 책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예전에 나보다 일찍 결혼해 아이 있는 집에 놀려갔을 때, 거실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낮은 책상을 보고 눈에 띈다 생각했었는데. 지금 우리 집이 딱 그 모습이다. 그 낮은 책상에 앉아 아이가 그리고 칠하고 오리며 사부작하는 모습을 쇼파에 앉아 관찰하는 게 내 즐거움이 되었다.
무엇을 만드는고 하니, 다양해서 나열이 필요하다. 일단 복사용지를 접어 넘기는 책을 만든다. 그 책을 넘겨가며 페이지마다 국기를 그린다. 책 말고 카드도 만든다. 복사용지에 연필로 네모 테두리를 먼저 그린 뒤, 국기를 그리고 네모틀대로 오린다. 이때 스카치테이프가 등장한다. 찢어지지 않게 일명 코팅에 들어간다. 그린 국기를 스카치테이프로 빈틈없이 붙이고, 뒤에 국가명 글자까지 써주면 완성. 자랑스럽게 만들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국기 가질 사람?" 묻는다. "저요." 손을 번쩍 든 사람은 게임에 참가할 차례다. 시시각각 룰에 따라 가위바위보로 지는 사람 혹은 이기는 사람이 비로소 가질 수 있다.
정말 공들여 만든다.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볼 때가 편하고 좋은데. 아이의 성화에 따라 그리기를 함께 해야 할 때가 있다. 별이 다섯개 들어가는 국기를 같이 그리는데 나보다 훨씬 정교하게 작은 별을 그리는 걸 보곤 솔직히 놀랐다. 나보다 손이 정교해졌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목격한 일은 마음 속에 기억된 경탄의 순간이었다.
아이가 방법을 찾아 점점 더 다양한 만들기를 시도한다. 반짝이 금붕어를 접어 네임펜으로 눈과 아가미를 그려 우리에게 선물로 내민다. 코 자는 자기만의 방에 몰래 재료들을 챙겨가 비밀스레 만들어 짠하고 완성해오는 모습은 귀여움 한도 초과다. 색종이 한장에 공룡 스티커 하나씩을 붙이고 그 색종이들을 이어붙여 하나의 콜라보 그림을 완성하기도 한다. 그렇게 공들여 만든 아이만의 소품들이 집 곳곳에 모여있다.
아직은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상자에 모아두었다. 상자들이 계속 쌓여가면 하나씩 기억 저편의 오래된 상자부터 처분하게 되겠지만. 아직은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다. 공들여 만든 몇몇 국기와 그림들은 내 다이어리 뒷편에 꽂혀있다. 나중에 다이어리를 펼쳤을 때, 그림들과 글씨가 가득인 아이의 소품들이 내게 어떤 감정을 불러올지. 지금은 그게 가장 궁금하다. 지금 아이는 내게 공들여 소품을 만드는 장인과 다름없고, 그렇게 완성된 소품들은 아이와 우리 세계의 연결고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