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52
롤랑바르트의 책, 애도일기를 자주 떠올리는 시간 안에 있다.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기에. 누군가가 떠나갔다. 한순간에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 자체가 마음에 구멍을 만든다.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어 그리 마음의 동요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의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떠나간 과정을 살피는 와중에 불쑥불쑥 여러 감정들이 마음을 뒤덮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섣불리 판단하려는 건 오만하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삶을 선택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며 살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면 더더욱.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도 자신 위주의 마음이다. 누구에게 이해받기 위해 인생의 방향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상식, 옳고 그름의 기준은 살면서 더더욱 경계가 모호해져간다. 점점 뚜렷이 남는 건 사람마다 다른 상황을 감히 다 짐작할 수 있을 리 없다는 겸허다. 그 사람만의 남모를 사정이 있었으리라 품는 너그러운 마음만이 절실해졌다.
후회라면, 한번은 다가갔더라면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살면서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적어도 하나는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여전히 미궁이었겠지만 하나의 기억도 없다는 건 마음의 구멍을 메울 어떠한 재료도 없단 의미였다. 떠나간 사람에 대한 실감과 후회. 이해하고 싶으면서도 모르겠는 마음. 그저 수용하며 거기까지였다는 체념. 이런 생각들이 애도하는 동안 내 마음 안을 부유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각색하는 그 사람의 이야기가 그 사람의 인생 전부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아는 것이었다. 그래야 거리를 유지한 채 가끔씩 떠올리는 게 괜찮아진다. 그리고 지금까진 자기만족을 느끼며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아픔만 주고, 최대한 많은 기쁨을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함께하는 시간이 전부라는 생각이 더 짙어졌다.
롤랑 바르트가 매일매일 애도일기를 쓴 것처럼 나와 가장 가까운 그 사람도 켜켜이 하루하루 애도의 시간을 쌓아가겠지. 그걸 옆에서 지켜보고 함께 할 수 있기를. 그렇게 함께한 시간이 언젠가 마주할 애도 앞에, 마음의 구멍을 메울 재료가 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