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일상 선택권

육아에세이 34

by forcalmness

언제 오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까.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최고참 나이의 반에 들어갔다. 이제 아이 윗나이 반은 더이상 없다. 아이도 새학기 새반에 적응하는 느낌도 거의 없이 익숙하게 어린이집에 등원한다. 내가 여기 터줏대감이야, 하는 포스로. 그 모습이 참 신기하게 안심이 된다. 익숙함이 주는 마음의 여유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아이가 안정감 있게 생활하는 요즘이 더할 나위없이 평온하다.



사실 그 평온함을 누리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편안하다,에서 그칠 줄 모르고 또다른 사고회로가 돌아간다. 모든 일이 끝과 시작이 이어져 있듯. 어린이집 마지막 해는 초등학교 첫 해로 연결되니까. 어린이집은 오년째이지만 초등학교는 또다시 신세계. 그 자각이 현재의 평온함을 깨뜨린다. 그 틈에 주변 이야기가 스며든다. 하원길에 어린이집 앞에서 만난, 안면 튼 같은 반 친구 엄마는 아이가 평일엔 매일 학원을 가고 있다 한다. 영어, 미술, 기계체조. 다양도 하다. 그러고 보니 새학기 어린이집 담임선생님과의 짧은 전화통화에서 선생님이 두번째 물었던 질문이 이거였다. 혹시 학원차량 타는 요일이 있을까요?



그만큼 많은 아이들이 평일 어린이집에서 노란버스를 타고 다양한 학원을 가고 있다는 의미일테니. 그때부터 조급함이 일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아이를 적응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가능한 학원을 검색하고, 시간표를 매칭해보고, 정보를 어느정도 머릿속에서 정리한 뒤, 아이에게 은근슬쩍 말을 걸었다. 리뷰 사진을 보여주며, 태권도와 축구교실의 모습을 들이밀어봐도 아이의 반응은 시큰둥 그 자체였다. 좋아하는 축구도 훈련된 어른 혹은 형아들만 가는 곳이라는 아이 답변에 벙쪄가면서. 사실상 거부의 표현이었다. 내가 집요하게 가보자고 거듭 제안할수록 아이의 반응은 점점 더 강한 거부감으로 이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히려 토요일 한시간 미술학원에 꾸준히 가고 있는 것도 고맙게 여겨야하는 판이었다.



거의 한달 간의 줄다리기 후 내려놓음을 선택했다. 일년 뒤 아이는 어떤 생활을 하게 될까. 모른다, 라는 답 그대로 지켜보기로 했다. 사실 우리가 다 결정한 뒤에 그대로 따라주길 바라는 건 이상한 방식이 아닐까. 차량픽업이 되는 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생각과 그 방법밖에 없다는 확신은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의 생각일 뿐이다. 몇개월 뒤 어떤 또다른 방법이 등장할지 모른다.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손쉬운 방법만이 능사는 아니니. 아이에게도 우리에게도 적절하고 안심되는 방법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놓고 싶지 않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아이의 일상은 아이에게 선택권이 있다. 강요된 일상과 부모가 짠 시간표 속에서 아이를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일학년이 되면 다시 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해도 대화와 조율이 어려웠던 갓난아기가 되는 건 아니니까. 아이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어느 곳에서 닿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불확실 속 불안을 그대로 둘 줄 아는 '부모의 기다림'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오늘도 다시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조급함과 불안에게 짐짓 당당하게 말해본다. '아이에게 아이의 일상 선택권이 있다'고. 그런 시간 속에 아이를 자유롭게 놓아주고 함께 웃고 노는 시간을 길게 가져보자고,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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